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장례방식을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비율이 높았다. 특히 만19~29세의 경우 ‘본인(생전 결정)’을 희망하는 비율이 53.5%로 절반을 넘었다. 남성(41%)보다는 여성(50.3%)이, 기혼자(44.7%)보다는 미혼자(45.5%)가 장례방식을 본인이 결정하는 게 좋겠다고 응답했다. 원하는 임종 장소로는 자택 등 주거지(39.7%)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병원 등 의료기관(30.1%), 잘 모르겠다(21.6%), 요양원(7.3%) 순이었다.
별도로 만난 7080세대와 Z세대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황망한 죽음은 ‘애사’임에 분명하지만 자신의 장례가 마냥 무겁고 슬픈 분위기가 아닌,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 ‘해피엔딩’이 됐으면 좋겠다는 데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난달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기재(25) 씨는 “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내가 가까웠던 사람들과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추억해줬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Z세대는 아직은 ‘남의 일’에 가까울 법한 장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에서 장례식은 대형 상조업체 등을 통해 치러지는 등 어느정도 정형화돼 있지만, Z세대들은 장례식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친구들이 치러주는 간소한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등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위한 마지막 파티...있는 그대로의 나를 추억해주길”
김 씨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넘겨 보여주며 “네컷 사진이 100장이 넘을 정도로 사람들과 사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신의 장례식장을 네컷 사진들로 장식하고 싶다고 밝혔다.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인싸’라고 불린다는 김 씨는 “장례식은 나를 위한 마지막 파티”라며 “큰 호텔 연회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추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돌잡이를 가도 성장 과정 사진을 보여주고, 결혼식에서도 보여주는데 장례식도 결국엔 하나의 행사 아닐까 생각한다”며 “개성 있게, 그리고 인싸답게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고 밝혔다.
함께 사진들을 보던 석유진(25) 씨는 “굳이 너무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통곡하는 분위기를 원하지도 않는다”며 “그냥 지인들이 느끼는 그대로 나를 생각하다 가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 장례식장에는 내 사진과 내가 좋아했던 옷, 향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더라도 와서 나라는 공통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 노원구에서 만난 이동환(24) 씨 또한 “외국에서 하듯이 장례식을 파티로 진행하고 싶다”며 “무겁고 슬픈 자리가 아닌,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쁜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세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발하게 하니까 장례식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내 SNS를 보여줘도 나를 추억하기 좋을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TPO라는 표현도 있듯이 적당한 예복을 갖춰 입고 고인을 기린다는 의미는 퇴색되진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 장례식에 대해 생각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유태영(21) 씨는 “내 장례식에는 내 지인보다는 내 다음 세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 장례식을 생각하는 의미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어차피 내 장례는 자녀들이 치러줄 것이고, 부모님 장례식을 어떻게 준비해드릴까가 더 고민”이라고 밝혔다.
◇“자녀 없을 수도, 여성이 상주일 수도...오랜 문화 바뀌어야”
자녀를 낳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친구들끼리 장례를 치러주는 문화가 생기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 성동구에서 만난 황신원(28) 씨는 “겉치레식으로 치르는 다 똑같은 장례는 필요 없다고 본다”며 “꼭 와야 하는 사람들만 왔다가 가는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황 씨는 “자녀 계획이 없기 때문에 내 장례는 누가 치러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내가 장례를 치를 시기에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가진 사람이 많을테니 친구들끼리, 결혼을 안 한 사람들끼리 서로 장례를 치러주는 문화가 생기지 않을까도 싶다”고 밝혔다.
지금의 장례식이 아직도 과거의 낡은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황 씨는 “장례식장에서 여성은 상주를 못한다는 게 참 이상하다고 느껴진다”며 “여성은 남자 가족을 ‘도련님’, ‘형부’ 등으로 부르는 등 그런 우리나라의 문화 자체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석유진 씨 또한 “조금씩 바뀌고 있고, 앞으로도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주는 ‘여남’ 구분 없이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나중에는 남자 형제가 있어도 상황에 따라 여자가 상주가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장례에 대한 인식은 본지의 여론조사 결과(18일자 10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장례방식을 결정하는 주체가 누가돼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본인’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다른 연령대보다 만19~29세(53.5%)가 가장 높았다. 상주 문화 관련 질문에서는 전체 연령에서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자녀가 상주가 돼야 한다(40.0%)’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장자가 상주를 맡는 전통적 방식에 찬성하는 비율은 17.9%에 머물렀다.
특히, ‘상주를 정하는 데 가족관계에 따라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가장 많이 응답한 연령대 역시 만19~29세(33.7%)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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