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대치동 블루스

입력 2023-09-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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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나른한 검은 하늘에 요란한 경적이 울리기 시작한다. ‘아, 학원 마감하는 시간이군.’ 서울, 수도권 각지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을 귀가시키러 온 학부모들이 갓길을 점령한다. 그러면, 경적과 단속 직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뒤얽히며, 밤하늘을 뒤흔든다. 대한민국 학원계의 메카, 대치동의 하루가 저무는 모습이다.

7년 전, 초등학생 코흘리개 남매를 데리고, 우리 부부는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 애들 잘 키우려면, 거기가 정답이야!” 확신에 찬 아내의 설득에 난 ‘그런가?’하면서 어리바리 끌려갔다. 덕분에 일산에 있는 내 진료실까지 매일 왕복 3시간 운전을 하게 되었다.

“아빠, 미분이 뭐예요? 반 친구들이 지금 학원에서 배우는 중이래요.” 초등학교 5학년, 큰아들은 벌써 기가 죽었다.

“친구가 놀이터에서 놀자고 했는데, 학원 가야 해서 10분만 놀고 헤어져야 한대요.” 3학년 막내딸은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는 이제 3년 후면 이곳을 떠나요. 아버님은요?” 학부모들끼리 만나면 하는 인사다.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금광(?)’을 좇아 잠시 고향을 떠난 객지 사람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이다.

‘문장완성검사’라는 정신과에서 자주 쓰이는 심리검사가 있다.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이라는 문항이 있는데, 상당수의 환자가 ‘이번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라고 답을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에 대해 아쉬움과 회한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그들이다.

“공부만이 정답은 아니에요.” “이제는 대학이 성공을 보장해 주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지요.” 면담 중에 종종 환자들에게 이런 덕담을 건넨다. 진료를 마친 후, 병원을 나선다. 차에 시동을 걸고, 나는 ‘대치동’으로 다시 머나먼 여정을 나선다.

지는 해가 발갛게 한강 변을 비추고 있다. “아빠, 오늘 수학 시험 100점 맞았어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평소 아이들에게 자주 하던 말을 주문처럼 되뇐다. “공부만이 살길이지….”

해는 다 저물었다. 흘낏 앞을 보니 날벌레들이 가로등 주변에 맹목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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