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근로시간, 낮은 노동생산성이 원인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근로시간이 긴 것은 노동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21년 기준 시간당 42.9달러다. 미국(74.8달러)의 57.4%, 독일(68.3달러)의 62.8%, 프랑스(66.7달러)의 65.8% 수준에 불과하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떨어지는 일본(47.3달러)보다도 낮다. 생산성이 낮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장시간근로를 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으로 일본(1607시간)에 비해 300시간이나 길다. OECD 국가 중에서도 5번째로 긴 장시간 근로 국가다. 하지만 우리가 독일처럼 근로시간을 연간 500시간가량 낮춘다고 독일과 같은 선진국이 되지 않는다. 일본은 낮은 노동생산성을 만회하기 위해 장시간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노동기준법상 노사가 합의하면 월 100시간, 연 720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노사가 합의하면 월 120시간 이상도 가능했던 것을 2018년 근로시간 개혁 차원에서 줄였다. 일본의 60시간 이상 장시간근로 비중도 2018년 기준 7.7%(총무성 통계)로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평균 근로시간이 OECD 평균(1716시간)보다 짧은 것은 단시간근로 비중이 높고 연차휴가 소진율이 높아서다. 우리나라의 연장근로 한도는 월 52시간, 연 440시간으로 일본에 비해 훨씬 짧고 52시간 초과근로 비율도 2021년 기준 4.7%(통계청 조사)에 불과하지만 MZ세대는 이조차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분노하고 있다.
사무직 중심 ‘부자 노동자’의 집합체
윤석열 정부에서 근로시간 개편을 노동개혁의 최우선과제로 삼은 것은 문재인 정부 때 도입한 주 52시간제로 인해 기업들의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주 68시간까지 가능했던 근로시간이 주당 16시간이나 줄어들면서 기업들은 밀려드는 일감을 제때 소화하지 못해 아우성쳤고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든 저임금 노동자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투잡을 뛰어야 했다. 윤 정부는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높여 기업의 생산활동에 숨통을 틔우고 근로자들의 근로선택권을 넓혀주는 쪽으로 개혁의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우리나라 직업군 가운데 60시간 이상 장시간 비중이 가장 낮은(한국산업안전공단 조사) 대기업의 사무직, 관리직, 전문직들이 모인 MZ노조가 공정가치와 삶의 질을 명분 삼아 근로시간 개편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노동개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MZ노조가 정부의 노동개혁을 좌지우지할 자격은 있나. MZ노조는 LG전자, 서울지하철공사, 금호타이어, 한국가스공사 등 10개 대기업 사무직 중심으로 8000여 명이 뭉친 ‘부자 노동자’의 집합체다. 이들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가 경제가 어려울 때 생산직 중심의 대기업 노조들이 고통 분담 차원에서 회사 측의 임금동결(또는 자제) 요구를 수용한 데 대한 반발로 설립되기 시작한 노조들이다. “내 밥그릇은 직접 챙기겠다”고 나선 노조다. ‘부자 노동자의 집단이기주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사무직들의 노동강도는 약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래리 이몬드 갤럽 아·태지역 사장은 “한국 직장인 10명 중 9명은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있을 뿐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는 게 한국 기업의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 사무직들의 절반 이상이 1~2시간 정도를 회사 업무가 아닌 사적인 일에 허비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당위성은 실종되고 쾌적한 ‘워라밸’을 중시하는 MZ노조의 집단이기주의에 정부 정책이 휘둘리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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