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스'(1975)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트 장르를 개척하고 'E.T.'(1982),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쥬라기 공원'(1993),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레디 플레이어 원'(2018)까지 수없이 많은 흥행작을 연출하며 할리우드의 대표적 명감독으로 호명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룬 신작 '파벨만스'로 관객을 만난다.
미국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둔 지난해 말 열린 ‘아카데미 대담’에 참석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가장 어려웠던 건 이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모든 내 영화가 개인적이긴 했지만 살아있는 경험을 영화로 만든 적은 없었다”고 했다.
유독 실감났던 ‘파벨만스’ 세트장을 언급한 그는 “오래된 침실, 부엌, 거실, 제 자리에 놓여 있는 유대교 촛대 같은 것들… 당시 내 삶과 가족의 모든 환경을 재현했다"면서 "1958년 그 시절 실제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영 이상했다”고 촬영 당시를 기억했다.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어린 시절을 은유하는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가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여정을 다룬다.
부모님과 처음 찾은 극장에서 세실 B.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1955)를 본 새미는 철로 위에서 기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액션 신의 긴장감과 박진감에 크게 놀란다.
그 장면의 잔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새미를 위해 부모님은 집 한구석에 장난감 기차와 철로를 마련해 주고, 이후 충돌 장면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계속해서 돌려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유년기의 새미가 무언가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호기심을 품게 되는 시작점이다.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성장한 새미는 8mm 필름 카메라를 제 몸의 일부처럼 지니고 다니며 창의적인 촬영을 시도한다. 주변 사람을 동원해 일으킨 모래바람은 전쟁 신의 일부가 되고, 필름에 과감하게 구멍을 뚫는 기법은 총격 장면의 ‘번쩍’하는 섬광으로 표현된다.
영화 촬영에 순수하게 몰두하던 새미가 최초의 고통과 마주하는 건, 태생이 예술가인 엄마(미셸 윌리엄스)와의 관계 때문이다.
온 가족의 캠핑 장면을 촬영한 홈비디오 영상을 편집하던 어느 날, 새미는 가족과도 다름없었던 친한 삼촌(세스 로건)과 엄마의 부정한 감정을 포착한다.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수십, 수백 번 돌려본 새미는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 사이로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 크게 좌절한다.
이사 후 더욱 극심해진 엄마의 우울증,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아빠의 실망감으로 가정불화가 극심해진 순간, 새미는 돌연 부모님의 다툼 장면마저도 카메라로 촬영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스스로 때문에 한층 더 고통스럽다.
영화는 가정사뿐만 아니라 지독한 학교 폭력을 겪은 일, 첫사랑에게 섣부르게 청혼했다가 차인 아픔 등 내밀한 개인사도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담아냈다.
여러 굴곡에도 영화 작업을 포기하지 않은 새미는 기어코 존 포드 감독의 영화 제작사에 취직해 할리우드에 발을 들이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그 단계에 도달하기 직전까지의 오롯한 경험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다룬 ‘파벨만스’로 올해 1월 골든 글로브 감독상,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흥행작 매출액이 1억 달러를 훌쩍 넘어서는 북미 시장에서 지난해 11월 개봉한 ‘파벨만스’는 1734만 달러(한화 약 226억 원)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고, 박스오피스 최고 성적도 7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영화를 처음 접한 소년의 환희와 비애, 고민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 감각을 대형 스크린에서 몸소 느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파벨만스’, 22일 개봉. 러닝타임 151분, 12세 관람가.
어떤 일을 좋아한다는 것의 기쁨과 슬픔, 그걸 가장 잘 아는 이의 애정어린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