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러 나라도 자국 상황에 맞게 법과 제도를 운용하다 보니 외국인 투표권에 관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져보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와 국내 여론 합의를 통해 많은 사람이 동의할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점차 많아질 것이므로 제도를 발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외국인 투표에 관한 논의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장기 거주 외국인에게 지방선거에 한해 권한을 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주민투표법 제5조2항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외국인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 사람’은 투표권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2006년 5월 31일 제4회 지방선거부터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이 지난 외국인은 한 표를 행사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는 투표권이 없다.
한동훈 장관은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우리 국민은 영주권을 가져도 해당국에서 투표권이 없는데 상대 국민은 우리나라에서 투표권을 갖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아야 유연성 있는 이민정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은 의무거주 요건이 없어 외국인이 영주권을 얻고 난 뒤 자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지방선거에 투표권을 갖게 돼 불합리하다고 보고 있다.
외국인도 투표권을 행사한 지 16년이 지났고, 여론도 나뉘는 등 많은 논의 여지도 있지만 실제 참여율은 저조하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당시 6726명이었던 외국인 투표권자는 2014년 4만8428명, 2018년 10만6049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6월 1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역대 최다인 12만7623명이 투표권을 얻었다. 전체 선거인 수의 0.29%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제 투표율은 2014년 17.6%, 2018년 13.5%, 지난해 13.3%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지난해 실제 투표권을 행사한 외국인은 1만6973명에 불과했다.
외국인들 가운데 투표를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안내를 받지 못한 경우도 많다. 경기도 한 생활용품 공장에서 포장업무를 담당하는 캄보디아 출신 보파(가명·41) 씨는 “외국인이라 투표를 할 수 없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10여 년간 한국에서 일하고 있지만 투표를 한 적이 없다. 그는 “주변 이주노동자 중에도 투표를 한 사람을 본 적 없다”며 “이주민도 투표할 권리가 있는 만큼 교육과 안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외국인 투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주노동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세금을 내는 만큼 의사결정권자를 선출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투표권을 넘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이용승 대구대학교 자유전공학부 부교수는 ‘이주민 참정권 확대의 가능성과 필요성’이라는 글에서 “구성원 가운데 통치와 규율은 받으면서 규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면 그 배제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투표권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체로 중국인 국적을 지닌 교포 등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하다. 과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외국인 선거권(지방 선거) 위헌입니다. 폐지해야 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중국인 증가로 민심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외국인 유권자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에 사는 김모(57) 씨는 “우리는 중국에서 투표할 수 없는데 중국인이 한국 지방선거에 투표한다는 건 난센스”라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내국인 권리 보호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자국 문화를 인정해 달라면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는데 투표권이나 참정권을 확대했다가 사회가 혼란스러워질까 봐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해외도 제각각 제도가 있지만 아시아 국가는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제한적으로 부여하는 편이다. 일본은 영주권자를 비롯해 외국인은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다. 일본 내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고 있지만 현행법상 투표할 방법은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말레이시아는 국적자만 투표할 수 있다.
일부 중남미 국가는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 칠레와 우루과이는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이라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는 지방선거에 한 해 투표권이 보장된다.
미국은 외국인이 연방 관련 투표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지방선거는 각 주가 재량권을 갖는다. 캘리포니아나 메릴랜드 등 10여 개 주는 제한적으로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는 반면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주도 상당하다. 최근 뉴욕시에서는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 80만 명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려고 했지만 뉴욕주 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무산됐다.
유럽은 제각각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외국인 지방참정권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 유럽연합(EU)가 창설되기 이전부터 아일랜드,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국적과 관계없이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줬다. 노르웨이는 지금도 EU 회원국이 아니더라도 3년 이상 거주한 모든 국가의 국적자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한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체코 등은 EU 회원국 국민만, 영국, 호주 등은 영연방국가 출신만 투표할 수 있다.
김도원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역사회 구성원인 외국인 주민 목소리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외국인 참정권을 갈등 요인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외국인들이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지역 내 사회통합 수준 제고를 위한 정책 마련에 힘쓰는 것이 바람직한 이민정책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