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리와 부동산불패 신화

입력 2023-0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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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정치경제부 경제전문기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2000년 어느 날의 일이다. 동년배들에 비해 꽤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사회 첫걸음을 내딛고도 몇 년 후였다. 다소 무계획적으로 살아왔던 터에 마음을 고쳐먹고 정기적금이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 세종대로 4거리에 위치한 모 은행 지점에 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적금 가입을 도왔던 창구 여직원은 적금을 들겠다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이같이 말했다. 이유인즉슨 적금금리가 너무 낮았기 때문.

당시 가입했던 적금 금리는 연 10%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치솟았던 금리가 떨어질 때였으니 10% 금리가 낮게 인식될 수밖에 없을 때였다.

실제,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예금은행 가중평균 금리를 보면 2000년 당시 정기적금 금리는 7~8%대였고, 대출금리도 8%대 중반을 오갔다. IMF 직후인 1998년 초반엔 각각 13%와 17%를 넘었었다.

불현듯 오래전 일화가 생각난 것은 최근 한은 고위관계자로부터 “금리가 너무 낮았었고, 부동산값이 조금이라도 떨어질라 하면 정부가 규제를 완화한 탓에 부동산값이 제대로 된 조정을 받지 못해왔다. 결국 젊은이들에게까지 부동산 불패신화를 심어줬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사상 유례없는 기준금리 인상에 부동산값은 떨어지고, 특히 영끌(영혼까지 끌어 투자)과 빚투(빚을 내서 투자)에 나섰던 젊은층을 중심으로 아우성이 커진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박 내지는 해명이었다.

작년 11월 기준 예금은행 가중평균 적금금리는 3.64%, 대출금리는 5.64%를 기록 중이다. 가중평균 금리가 이 정도니 신용도가 다소 낮은 사람들의 실제 대출금리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또, 한은이 본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전인 2020년 8월까지만 해도 각각 0.91%와 2.6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었으니 체감하는 금리상승폭은 더 클 수밖에 없겠다.

금리가 높아 특히 대출자들을 중심으로 원성의 목소리가 커지곤 있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금리수준이 높다고 할 순 없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적정금리 수준과 관련해 “빚을 내기엔 다소 부담스런 수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를 3.25%로 올린 지난해 11월 “중립금리 수준의 상단에 위치했다”고 평가했다는 점에서도 현재 금리 수준은 초저금리를 벗어나 겨우 적정금리 수준을 회복한 정도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소위 초이노믹스(최경환+이코노믹스의 합성어)라는 기치 아래 빚 내서 집 살 것을 권했다. 이에 발맞춰 이주열 당시 한은 총재도 취임 직후 향후 방향성은 인상이라고 언급한 지 불과 반년도 안 돼 금리인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동산값 하락을 어떻게든 되돌려 보려는 정부의 총력전에 한은도 보조를 맞춘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또한 과열 땐 옥죄고, 부진 땐 푸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옥죄는 것엔 반발이 심했던 반면, 푸는 것엔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는 점이다. 종합부동산세 강화에 대한 반발이 대표적인 예다. 상위 1% 정도만 낸다는 종부세에 그토록 세금폭탄이라고 반발했다. 또, 부동산값 급등에 정권까지 바꿨다는 점에서 보면, 지금의 하락에 환호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 부동산값은 외환위기 이후 최근 상황을 빼면 조정다운 조정을 받은 적이 없고, 가계부채 규모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실제, 국민은행 주택매매가격 종합지수로 보면 작년 11월 전월대비 1.1포인트(p) 하락했는데,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월 1.2p 하락 이후 최대폭이었다. 2003년부터 2005년과, 2009년, 2012년, 2019년 하락기가 있었지만 0.1p에서 최대 0.5p 하락을 오갔을 뿐이다.

가계빚 또한 최경환 전 부총리 취임 전인 2014년 2분기 1035조9000억원에서 작년 3분기 1870조6000억원까지 늘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견줘서도 같은 기간 78.1%에서 105.2%를 기록해 이미 국내 경제규모를 뛰어넘었다. 이는, 세계 어느 주요국들보다도 빠른 증가세고 높은 비율이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나섰다. 부동산값 급등에 과도했던 규제를 되돌리는 수준 이상이면 안 될 것이다. 한은 통화정책 또한 더 이상 부동산값 올리기에 동조해선 안 된다. 지금은 학습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금리, 좁게는 빚의 무서움을 배워야 할 때다. kimnh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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