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서민들은 불안한 쇼핑을 하고 있다. 물가로 보나 금리 수준으로 보나 마음 놓고 돈을 쓸 상황은 아니다. 예상보다는 낮았다고 하지만 소비자 물가가 지난 10월에도 7.7%의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걸로 나타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해를 넘겨야 할 판이다. 초고속으로 인상한 금리도 이달 한 차례 더 올릴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어 더 그렇다.
그래서 전국소매점연맹은 올 연말 대목(11월 1일~12월 31일)은 전년보다 6~8%가량 늘어난 9426억~9604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성장이나 마찬가지다. 선물과 할러데이 장식물 쇼핑 액수만 따지면 지난해보다 5%가량 줄어든 가구당 833달러 정도로 추산했다. 딜로이트는 연봉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 가구들도 지난해보다 7%가량 줄어든 2624달러를 쓸 것이라고 예측했다. 선물 개수도 지난해 19개에서 올해는 11개로 대폭 줄일 거라고 보았다. 선물을 줄이고 여행에 더 돈을 쓰겠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업계의 전망과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추수감사절 이후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버먼데이까지 5일간 쇼핑에 나선 소비자들은 1억9670만 명. 지난해보다 1700만 명이나 더 많고, 소매점연맹이 추적을 시작한 2017년 이후 최다 숫자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늘었다. 온라인 쇼핑객은 전년 대비 2% 늘어난 데 그쳤지만 상점에서 직접 구매한 소비자는 17%나 늘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플랙프라이데이에 온라인으로 쇼핑을 한 소비자가 무려 8720만 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액수로 봐도 연말 대목은 대박이 났다. 사이버먼데이 쇼핑 총액은 113억 달러. 지난해보다 5.8%가 늘었다. 사상 최고 실적이다. 5일간 총액은 352억 달러로 최고 기록이다. 이대로 연말까지 가면 예상치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고물가에 고금리, 불경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예상을 깨고 소비자들이 쇼핑몰로 달려간 이유는 뭘까. 우선 팬데믹이 사실상 물러갔고, 공급망이 다소 안정화되었으며, 노동시장이 건강하다는 점 등 때문에 어느 정도 불안감이 해소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유가 안정도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절부절못하는 소비자들의 소비본능을 부추겨 쇼핑몰로 불러들인 소매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컸다.
통상 연말 할러데이 시즌은 핼러윈 10월 초부터, 추수감사절은 11월 초, 크리스마스는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블랙프라이데이부터 시작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불경기가 예견될 때마다 조금씩 당기기 시작해 전체적으로 연말 쇼핑 시즌이 늘어났다. 올해 가장 먼저 불을 댕긴 건 코스트코. 8월 한여름 매장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했다. 아마존은 두 번째 할인행사인 프라임데이를 10월에 앞당겨 개최했다. 타깃은 10월 내내 블랙프라이데이 수준의 세일을 실시했다. 사실상 시즌을 두 달가량이나 앞당긴 셈이다. 또 백화점과 유명 패션, 보석 브랜드들도 11월부터 대대적인 연말 세일 광고전을 펼쳤다. 이렇게 해서 한 번 앞당겨진 시즌은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소비 성향이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제논리로만 따지면 내년 경기침체에 대비해 소비를 억제하고 한푼이라도 저축을 해야 마땅하나 쇼핑몰로 몰려가는 현상에 기업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소비자행동 이론이나 구매심리 같은 이론적 접근방식으로는 파악이 안 되는 소비본능이 있고, 그것이 때론 금리나 물가, 침체에 대한 우려보다 더 무서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당장 구매를 할까, 아니면 세일 때까지 기다릴까. 선물과 여행, 어느 쪽에 더 돈을 많이 쓸까. 온라인 배송을 신뢰하는지, 아니면 가까운 상점을 찾을 것인지….
대형 할인점 콜스의 피터 본파르트 회장은 “모든 사람이 크리스마스가 올 거라는 걸 믿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고 빗대어 말했다. 산타가 오긴 오는데, 과연 썰매 안에 선물이 들어 있을까. 어린애 같은 궁금증을 대형 소매점 최고경영자가 갖고 있다는 건 웃을 일만은 아니다. 할러데이 쇼핑을 예측하는 건 과일케이크 레시피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우스갯소리를 올해는 흘려들어선 안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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