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관련 업무 가중 등 문제 제기 잇따라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과 서울시 공무원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꼬리 자르기식 수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과 서울시 등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참사 이후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 등 재난 안전 주무부처의 윗선 수사나 주요 수장들의 책임 표명보다는 일선 직원들에게 책임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경찰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1일 낮 12시 44분께 용산경찰서 전 정보계장 A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날 오후 4시 25분께 서울시 안전총괄실 소속 안전지원과장 B 씨도 숨진 채로 발견됐다. A 씨와 B 씨는 모두 별도의 유서는 남기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이태원 축제 공공 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와 관련해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A 씨는 핼러윈 기간 이태원 일대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참사 이후 사무실 컴퓨터에서 삭제를 지시하거나 회유한 혐의를 받았다. 특수본은 지난 7일 A 씨를 용산서 정보과장과 함께 직권남용·증거인멸·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바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전날 고인의 빈소를 찾아 “누구보다 황망해 하고 있을 가족분들께 경찰 조직을 대표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가족분들은 고인의 이러한 희생이 헛된 희생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11일 서울시 안전총괄실 산하 안전지원과장 B 씨도 숨진 채 발견됐다. B 씨는 당일 오전 반차를 쓰겠다고 해당 부서에 연락한 이후에 출근하지 않았다.
서울시 안전지원과는 보통 폭염, 한파, 지진 등 자연재해와 관련한 종합대책을 담당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B 씨가 참사 관련 수사 개시를 통보받거나 참사 당일 재난상황실이나 이태원 현장에서 근무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서울시 홈페이지 내 부서장 결재 공문을 보면 B 씨는 ‘이태원 사고 관련 재난심리회복 지원계획’ 등의 문서를 최종 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국회나 시의회에서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각종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날 B 씨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오 시장은 지난 11일 시장단 긴급회의에서 “마음이 아프다”며 “이번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고인이나 해당 부서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잘 살펴봐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서울시 등 내부에서는 일선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 내부망 ‘현장활력소’에서는 한 경찰관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면서도 “모든 책임을 경찰에 돌리며 꼬리 자르기를 의심케 하는 정치권의 행태에는 우리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안전법 66조에 따라 지역축제의 안전관리계획은 국가 또는 지자체가 수립하고 수행해야 하며, 핼러윈이 주최자가 없는 행사더라도 정부에는 모든 재난에 대한 예방책임이 부과돼 있고, 경찰은 요청에 따라 제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지원기관”이라고 썼다.
유족들도 경찰 수뇌부에 항의했다. 전날 김광호 서울경찰청이 A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자 일부 유족은 "살려내라",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명예를 회복하라"고 소리치며 항의하기도 했다.
서울시 내부 익명게시판에도 ‘과장님은 이태원 때문에 돌아가신 것’, ‘관련 없는 부서가 왜 요구 자료를 제출하고 민원 답변을 하느냐’는 글이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특수본은 경찰과 소방당국, 자치구 등에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특수본은 서울교통공사 종합관제센터 팀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참사 직전 이태원역에 승객이 몰려 위기징후가 있었는데도 무정차 통과를 하지 않은 경위, 무정차 통과 결정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조사했다. 특수본은 경찰과 공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참사 당일 무정차 요청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과실 여부를 따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재난 안전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에 대해선 법리 검토 단계에 머물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