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실 자리 옮겨 첫 브이로거 대뷔…'중기부 사용설명서' 주제
“국민이 모르는 정책=잘못된 정책”…눈 높이 맞추려 춤사위도 동원
정책 불만 댓글 아쉽기도 하지만. 향후 목표는 ‘크리에이터 공무원’
“여기 있는 중기부의 풀네임 너무 헷갈립니다. 중기청 아닙니다. 중소기업벤처부 아닙니다. 중소벤처기업부 맞습니다”
어색한 랩과 잔망스러운 춤사위로 눈길을 사로잡는 영상이 있다. 엉성한 사파리룩을 입은 한 남자가 골반을 튕기며 중소벤처기업부의 정확한 명칭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이다. 비교적 조회 수가 적은 정부 부처 유튜브 특성에도 불구하고 짧은 분량의 이 영상은 조회수 2.5만 회와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영상 속 주인공은 래퍼, 개그맨, 연예인도 아닌 중기부의 유인석 사무관이었다.
통상 공무원을 생각하면 직렬에 따라 경직되게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특히 정책을 만들고 정부 사무를 취급하는 부처 공무원들은 더 그렇다. 하지만 영상 속 유 사무관은 조금 다르다. 넘치는 끼로 약간 엉성하지만 친근한 이미지를 풍긴다. 그렇다고 알맹이가 없는 건 아니다. 그가 영상에서 추던 가벼운 춤사위에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었다. 중기부 대변인실에서 온라인 홍보 전문관으로 일하는 유 사무관은 국민의 ‘관심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의 틈을 좁히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유인석 사무관은 2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서 진행된 본지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정책이고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은 잘못된 정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며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부처 내에서 홍보 업무를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유 사무관은 2019년 10월부터 4년간 온라인 홍보 전문관을 맡았다. 전문관 제도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무에 대해 4년간 해당 직무에 근무연수를 지정함으로써 전문성을 축적하고 연속성 있는 업무를 추진하는 중기부의 제도다.
사실 그는 2009년 중기부의 전신 중소기업청에 입사해 회계, 기술, 인력, 창업, 소상공인 등 업무를 담당했었다. 약 10년간 홍보와 거리가 먼 업무를 하던 그가 홍보 전문관으로 뛰어든 배경에는 ‘경로 이탈’이란 가치관이 있었다. 유 사무관은 2009년 퇴근 시간에 진행되는 사내 라디오 방송을 얼떨결에 맡게 된 것이 홍보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 주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노래를 선곡해 틀어주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었다고 느꼈다”며 “기존 노래만 틀어줬던 방식을 살짝 바꿔 선곡한 노래들의 의미를 설명하거나 짧은 시를 읊어줬다”고 말했다.
경로 이탈한 음악방송은 2012년 그를 중기청 초대 사내 아나운서로 만들게 했다. 유 사무관은 “대변인실 과장님께서 지난 음악방송 DJ를 했던 제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시고 적임자라고 생각하셨다”고 초대 아나운서로 선정된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기술개발과로 일하던 시절 정부 부처 최초 온라인 설명회 기획을 진행했다. 유 사무관은 “현장 설명회의 비효율을 개선해보라는 과장님의 지시를 받아 실시간 온라인 설명회를 기획해 시도했다”며 “그동안의 소통 행보로 카메라가 두렵지 않아 온라인 설명회 사회자 역할도 수행했다”고 했다.
결국, 홍보 전문관이 된 그는 중기부의 첫 브이로거가 됐다. 지난해부터 ‘중기부 사용설명서’라는 주제로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중기부 사용설명서는 중기부 담당자가 직접 정책 기획 및 집행 현장에 방문해서 쉽고 친근하게 정책을 설명해주는 콘텐츠다. 월 2편씩 격주로 제작된다. 이 콘텐츠에서 유 사무관은 지난해는 ‘열정 만수르’, 올해는 ‘중기부 소울리스좌’라는 캐릭터로 나와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유 사무관은 “소울리스좌, 영화 헤어질 결심 패러디 등 콘텐츠도 의미 있는 정책에 재미를 더하는 과정”이라며 “재미있는 콘텐츠에 의미까지 추가한 그런 홍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사무관의 콘텐츠 영감은 수많은 생각 속에서 시작된다. 그는 매일 중요 키워드로 마인드맵을 만든다고 했다. 한 키워드에서 시작된 콘텐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진적으로 확대됐다. 실제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면 이름은 ‘생각남 유인석’으로 상태 메시지는 ‘생각정리 능력자’로 돼 있다. 유 사무관은 “좋은 영감을 주는 콘텐츠들을 매일 꾸준히 메모한다”며 “어떤 포인트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있는지, 어떤 관점에서 기획되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정책 홍보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카메라 앞에 선 공무원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애로사항도 있었다. 유 사무관은 열심히 만든 영상에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을 때 가장 아쉽다고 했다. 유 사무관은 “영상 콘텐츠와 관련 없는 중기부에 대한 불만들이 댓글로 채워지는 경우 힘들다”며 “정책고객에게 의미와 재미를 전달하려는 참신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 대해 ‘자기검열’을 통해 스스로 선을 긋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쉬움 속에서도 이러한 반응들은 소통의 과정이라고도 했다. 한 마디 한 마디의 피드백은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유 사무관은 “홍보는 소통이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정책정보들을 고객들에게 전해드리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이자 임무”라며 “그 과정에서 정책고객들의 피드백은 콘텐츠 제작에 참고해야 하는 사항이고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 들어서 중기부가 역점으로 추진하는 홍보 방향은 ‘상생과 동행’이다. 내달 1일부터 상생형 할인행사 ‘동행축제’와 중소기업계의 해묵은 과제인 ‘납품단가연동제’, ‘벤처‧스타트업 3.0 상생 모델’ 등 관련 정책들을 중점으로 홍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국민과의 협업도 함께 진행한다. 중기부는 지난 7월부터 50여 명의 ‘제1기 국민 서포터즈’ 선발했고 ‘제1기 명예공무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유 사무관은 “국민들이 직접 정책 기획 및 집행 현장을 브이로그로 담으며 국민의 언어로 의미를 담아 잘 풀어낼 예정”이라고 했다.
유인석 사무관의 향후 목표는 ‘크리에이터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유 사무관은 “기술변화에 따라 사회가 급변하는 가운데 정책은 현장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변화에 맞춰서 정책도 신속하게 바뀌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영상이나 글 같은 콘텐츠로 표현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고 힘차게 말했다. 평범한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거기에 재미까지 전달하겠다는 유 사무관의 의지에서 소울‘less’가 아닌 ‘max’를 확인했다.
‘N행시 짓기’는 단순히 언어 나열이지만, 이를 통해 사람의 유머와 순발력 그리고 통찰력까지 알 수 있는 언어의 요리다. 기자는 지금까지 인터뷰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N행시를 들어왔다. 그들의 N행시를 소개한다.
※유인석 중소벤처기업부 사무관의 3행시
중- 중지!
기- 기억하세요~
부- 부뿌루뿌, 중기벤처 아닙니다! 중소벤처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