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웃음 치료

입력 2022-08-02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장·내과 전문의

남편의 손을 잡고 힘겹게 의자에 앉은 아주머니의 입에서는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10년 넘게 고혈압으로 내게 치료받던 분이었는데, 3개월 전 안타깝게도 말기폐암으로 판정받고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 중이다. 오늘은 감기 증세가 있어 근처 개인의원에 방문했으나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2차 병원인 우리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올 때면 항상 웃는 얼굴에 가끔은 피곤할 때 마시라고 음료수도 하나씩 사주던 분이었는데, 폐암 진단 후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져 버렸다. 같이 들어온 남편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다.

“요즘은 좀 어떠세요. 항암치료 중에 불편한 것은 없으세요?”

“네, 식욕이 없어진 것 말고는.”

“오늘은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어요?”

“요즘 몸이 좀 피곤하더니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기침이 잘 낫지를 않아서요.”

“음, 폐렴이 생겼나 청진 좀 해 볼게요.”

진찰을 위해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청진기가 보이질 않았다. 책상 서랍 속까지 뒤적거리는 내 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내 목을 손으로 가리킨다. 요즘 건망증이 심해지는지 청진기를 목에 걸고 찾는 버릇이 있던 차에, 오늘 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허둥대며 목에 걸린 청진기를 집어 진찰을 하는 내 모습을 보던 아주머니와 남편이 빙그레 웃는다. 몇 개월 만에 보는 두 분의 웃음이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아무리 좋고 비싼 항암제도 그분들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갔는데, 아무것도 아닌 내 실수가 잃었던 웃음을 잠시나마 다시 찾아 줄 수 있었다니.

요즘은 웃음 치료가 많이 연구되어 암 환자나 만성질환자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와 질환을 앓는 분들께도 이용된다고 하니, 가끔은 환자들을 위해 내 건망증이 재발하길 바라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한 번의 웃음이 아주머니의 병세를 좋아지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건망증적 행동에서 질병이 호전될 수 있는 작은 소망이 보일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진료를 마치고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 대신 “오늘처럼 많이 웃으세요”란 인사를 건넸다.

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장·내과 전문의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생일 축하해” 루이바오·후이바오의 판생 1년 [해시태그]
  • '풋살'도 '요리'도 재밌다면 일단 도전…Z세대는 '취미 전성시대' [Z탐사대]
  • "포카 사면 화장품 덤으로 준대"…오픈런까지 부르는 '변우석 활용법' [솔드아웃]
  • 단독 삼정KPMG·김앤장, 금융투자협회 책무구조도 표준안 우협 선정
  • 4인 가구 월 가스요금 3770원 오른다…8월부터 적용
  • '연봉 7000만 원' 벌어야 결혼 성공?…실제 근로자 연봉과 비교해보니 [그래픽 스토리]
  • 코스피, 삼성전자 깜짝 실적에 2860선 마감…연중 최고
  • 고꾸라진 비트코인, '공포·탐욕 지수' 1년 6개월만 최저치…겹악재 지속 [Bit코인]
  • 오늘의 상승종목

  • 07.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80,231,000
    • -4.08%
    • 이더리움
    • 4,228,000
    • -6.4%
    • 비트코인 캐시
    • 463,100
    • -5.84%
    • 리플
    • 602
    • -5.35%
    • 솔라나
    • 191,600
    • -0.98%
    • 에이다
    • 498
    • -8.29%
    • 이오스
    • 681
    • -7.72%
    • 트론
    • 180
    • -1.1%
    • 스텔라루멘
    • 120
    • -5.51%
    • 비트코인에스브이
    • 50,250
    • -8.3%
    • 체인링크
    • 17,470
    • -6.83%
    • 샌드박스
    • 399
    • -4.5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