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소년의 맹세

입력 2022-05-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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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명지병원 외래교수

중학생 소년에게 인생은 등을 짓누르는 무거운 돌과 같았다. 그는 철학과 종교 서적 등에 파묻혀 뜻 모를 한자 어휘와 영어 단어가 잡초처럼 수북한 책들 속에서 어떻게든 인생의 비밀을 발견해 내려 애쓰곤 하였다. 그러던 중 ‘프로이트’를 알게 되었고, 그는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정신과 의사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주문처럼 되뇌이곤 하였다. 그 후, 그의 결심은 평생토록 바뀐 적이 없었다. ‘아무 의사’가 아니고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하였다. “너는 무슨 과를 지원하고 싶니?”라는 한 선배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답을 하자, “정신과는 가난한 과인 거 알아?”라는 화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후 줄곧 흔들리지 않는 그의 결심에 지인들은 심지가 굳다며 칭찬을 하였고, 그는 그런 찬사를 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곤 하였다. 어느덧 졸업을 하고, 인턴이 된 그는 당연히 정신과 전공의를 지원하였다. 어느 날 전공의 선배가 찾아와서 걱정스레 한마디 하였다.

“올해는 우리과 경쟁률이 좀 높은데, 만약 떨어지면…. 2지망으로 정해 놓은 과는 있고?”

“형! 전 재수, 삼수 아니 백수를 해서라도 꼭 할 겁니다. 그게 아니면, 제 인생은 의미가 없어요!”

“야! 너 그런 태도로 인생을 살지 마! 그런 자세로 우리 과에 지원하는 거라면 절대 사양하겠어!”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어쨌든 그해, 운 좋게 전공의에 합격한 그는 한참 후에 선배의 뜻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목표를 ‘명사’로 설정하면, 달성하지 못할 경우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 그러므로 목표를 ‘동사(어떠한 행위를 하겠다)’로 유연하게 정하면, 목표 달성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

그가 ‘정신과 전문의’란 명사를 목표로 하면, 얼마나 좁은 문을 여러 차례 통과해야 하는가? 하지만 ‘마음고생을 하는 이들을 돕는 것’으로 하면 심리 상담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등 많은 직업군에서 그런 행위를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번번이 연예기획사 응시에 탈락하여 방황하는 연습생,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져 점점 술이 늘어가는 공시생, 다들 인생의 목표를 ‘명사’로 설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의 완고했던 소년을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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