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 재고 부족ㆍ우크라 사태로 인해 경유 가격 폭등
“러시아산 석유제품 제재 계속되면 가격 강세 지속”
14년 만에 전국 평균 경유 판매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다. 가격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면서 경유를 주로 사용하는 생계형 운전자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12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11일 기준 전국 주유소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ℓ)당 1947.59원으로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인 ℓ당 1946.11원을 추월했다.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2.09원 올랐지만, 경유는 하루 만에 5.19원 오르면서 가격이 역전됐다. 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선 것은 2008년 6월 이후 약 14년 만이다.
경유 가격이 치솟은 원인으로는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으로 석유 소비가 증가하면서 촉발된 전 세계적 경유 재고 부족 사태가 꼽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러시아산 석유제품에 대한 서방국가의 제재 영향도 컸다. 러시아산 경유를 수입하는 비중이 60%에 달했던 유럽이 대체재를 찾으면서 국제 경유 가격이 급등했다.
또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이달부터 유류세 인하 폭을 20%에서 30% 정률로 확대하면서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약 247원, 경유에 붙는 세금은 약 174원 줄었다. 휘발유에 대한 유류세 인하액이 경유보다 약 73원 더 커지면서 가격이 역전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러시아산 석유 제품에 대해 세계 각국이 제재를 지속하고 있는 만큼 경유 수급난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한샘 SK증권 연구원은 “유럽의 원유 조달 여건이 원활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 단기간 내에 경유의 수급 차질 해소가 쉽지 않다 보인다”며 “여기에 낮은 재고까지 더해져 당분간 타이트한 수급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도 “현재 분위기로 2분기까지 러시아산 경유 공급 제한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경유 가격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도 “3분기에는 OPEC+ 감산 완화가 종료되고 미국 셰일가스 공급도 늘어나는 만큼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유 가격이 고공행진하면서 화물·물류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경유는 화물차량이나 택배 트럭, 버스 등 상업용 차량과 굴착기, 레미콘 등 건설장비의 연료로 사용된다. 경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화물차 운전자 등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화물·물류 업계의 부담을 덜기 위해 영업용 화물차, 버스, 연안 화물선 등에 대해 경유 유가연동 보조금을 이달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기준가격(L당 1850원) 초과분의 50%를 지원하되 유가보조금 제도에 따라 화물업계 등이 실제로 부담하는 유류세 분인 L당 183.2원을 최대 지원 한도로 정했다.
화물·물류 업계에서는 정부의 보조금이 인상분을 보완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화물노동자는 월 200만 원 이상 소득감소를 겪고 있고, 유가연동보조금 한시 도입도 사실상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도 “유류세 인하 폭 확대하기 전 수준에서 유가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국토교통부에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