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서만 53.60원 폭등하며 ‘심리적 저지선’인 1200원을 가뿐히 넘겼다.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하루 새 10.30원 급등해 1242.30원에 마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긴축 우려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에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항공사는 환율이 오르면 항공기 리스비, 유류비 등을 달러로 지급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재무 부담이 커지는 업종 중 하나다. 또한 항공업 특성상 외화 표시 부채가 많아 환율이 추가 상승하면 외화환산손실 확대가 불가피하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달러 부채 보유 규모는 각각 9조4497억 원(2021년 말 기준), 4조9861억 원(2021년 3분기 말 기준)이었다. 반면 달러 자산의 보유 규모는 각각 2조8431억 원, 1조1195억 원에 불과했다.
국내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화물 운송 때문에 작년 실적이 굉장히 잘 나왔는데, 달러 강세가 지속된다면 올해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항공은 작년 1조4644억 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도 6386억 원으로 전년 1946억 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실적 개선에는 유가가 안정된 흐름을 보인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달러 강세에다 유가마저 고공행진하고 있어 더욱 부담스러운 상황에 부닥쳤다.
달러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대한항공은 약 490억 원의 환차손과 재무제표상 현금 흐름 측면에서도 190억 원의 손해를 볼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3분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환율이 10% 오르면 3867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낸 아시아나항공은 “환율 상승으로 인한 영업외손실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당기순이익은 1152억 원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환율 상승과 고유가가 겹친 정유업계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수출 비중이 다른 산업보다 비교적 높은 탓에 환율이 오르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원유를 구매할 때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부담도 크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환율이 5% 상승하면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750억 원 감소한다. 3분기 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외화금융부채(달러 기준)는 68억 달러가 넘는다.
그 외 달러화 자산 대비 달러화 부채가 많은 회사는 한국가스공사(2021년 3분기 말 12조3693억 원), 두산(3분기 2조 978억 원), 대우조선해양(이하 2021년 말 1조9994억 원) GS건설(1조9757억 원), SK텔레콤(1조8115억원) 포스코(4670억 원) 등이었다.
S-Oil은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통해 “다른 모든 변수가 일정하고 각 외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이 10% 상승·하락한다면 세후이익은 2243억 원(전기 1927억 원)만큼 증감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환율 상승이 호재로 여겨지는 업종도 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3월 내놓은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원ㆍ달러 환율이 5% 상승하면 법인세 반영 전 당기손이익은 약 2505억 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환율 변동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사들인 파생금융상품이 재무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강사들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환 헤지 전략을 택하기도 하는데, 환율의 등락 폭이 예상을 뛰어넘을 경우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 원ㆍ달러 환율을 둘러싼 대외 여건들이 환율의 추가 상승을 압박하는 재료들로 인식되고 있다고 판단한다”며 “단기적으로 원ㆍ달러 환율은 1250원을 상회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