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폭등에도 정유업계 긴장하는 이유는

입력 2022-03-0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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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ㆍ英 러시아 원유 금수…국제유가 130달러 돌파
유가 상승 정유업계 호재지만…장기화하면 악재
석유 제품 수요 위축으로 정제마진 하락 가능성도

▲미국 워싱턴주 텀워터에 위치한 주유소에 에너지 가격이 표시돼 있다. 텀워터/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주 텀워터에 위치한 주유소에 에너지 가격이 표시돼 있다. 텀워터/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롯한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정유업계가 올해 큰 폭의 실적 상승을 이룰 전망이다. 다만 석유제품의 수요 위축으로 정제마진이 하락할 수 있어 업계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4.30달러(3.6%) 상승한 배럴당 123.70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다.

같은 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5월물 브렌트유도 4.77달러(3.9%) 뛴 배럴당 127.98달러로 집계되면서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장중에는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를 발표하면서 국제유가는 좀처럼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석탄을 수입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원유 수입 제재는 유가 급등을 초래해 미국에도 타격을 줄 수 있지만, 러시아 경제 고립을 위해 초강수를 둔 것이다.

영국 역시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원유 수출국이다. 하루 450만 배럴가량의 원유와 250만 배럴가량의 원유 관련 상품을 수출한다. 미국과 영국의 러시아산 원유 제재 소식에 수급 차질 우려가 나오면서 국제유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게시된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ℓ당 1천887.62원을 기록했다. 2014년 3월 이후 8년 만에 최고가다. (연합뉴스)
▲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게시된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ℓ당 1천887.62원을 기록했다. 2014년 3월 이후 8년 만에 최고가다. (연합뉴스)

통상 정유업계에서는 국제유가가 오르는 것을 ‘호재’로 본다. 정유사는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한 후 수송을 거쳐 국내에 판매하는 데까지 1개월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에 국제유가가 오르면 저유가 때 사들였던 원유 비축분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평가 이익’이 발생한다.

그러나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반드시 호재로 볼 수는 없다.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요 위축 등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문제 등 단기 영향으로 급등한 유가는 가격 불확실성이 커 언제든 하락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석유제품 가격이 너무 오르면 수요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크다. 유가는 오르는데 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면 정제마진이 둔화하면서 오히려 정유업체 실적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정제마진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금액을 말한다. 정유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정제마진 4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는데 유가 상승 장기화로 수요가 위축되면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섰을 당시 국내 정유사들이 일제히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국제유가 상승에도 경제 침체로 수요가 감소하면서 정제마진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정유사의 매출원가 6%는 연료비, 유가와 연동되는 만큼 고유가 장기화에 따른 비용 압박이 예상된다”며 “지정학 리스크에 따른 업황 지표들의 강세가 수익성에 건전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고유가 상황이 지나치게 장기화할 경우 수요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환율이 오르면 비싸게 원유를 사는 데다 환차손까지 발생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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