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전 세계 뒤덮은 ‘분노와 혐오’ 뒤에 숨은 무리들

입력 2021-05-31 06:00 수정 2021-06-0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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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국제경제부장

4·7 재·보궐선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젠더 갈등과 이에 따른 남녀 간 ‘분노와 혐오’가 부각됐다. 세계적으로도 분노와 혐오는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처럼 젠더 갈등 문제는 아니지만, 인종 차별과 소득 양극화로 서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 미국은 중국 등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가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아시아계 남성이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려 선로로 추락했다. 이 남성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3월 애틀랜타에서는 한인 4명을 포함해 총 8명이 무차별 총격으로 사망했다.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폭행과 폭언은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월 초 벌인 충격적인 의회의사당 점거 사건도 부정선거가 치러졌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한 분노가 계기로 작용했다.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코로나19로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던 시민들이 정부의 세제 개편 추진에 분노해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으며, 이로 인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분노와 혐오의 시대를 단지 안타깝게 바라만 봐서는 안 된다. 이제 진정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인이 분노에 휩싸이게 된 최근 상황에 대해서 사람들의 정치적 분노를 부추겨 이익을 얻는 세력과 단체로 구성된 ‘분노 증폭 시스템’이 있다고 진단했다. WSJ가 지목한 이 시스템의 멤버는 정치 컨설턴트와 이들을 기용하는 선거 입후보자들, 인터넷 광고회사, 소셜미디어와 케이블 TV 프로그램 사회자들이다. 선거에서 정치인이 고용한 컨설턴트와 광고회사들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광고를 내보내면서 그 대가로 막대한 돈을 받아 챙기는 구조여서 갈수록 자극적이고 공격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 의해 선동된 유권자들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다.

TV와 신문 등 분노를 증폭시키는 광고를 내보내는 언론 매체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셜미디어와 일부 케이블 TV도 클릭 수와 조회 수를 위해 극단적인 의견 대립을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 WSJ의 지적이다.

미국 사례이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녀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등 온 나라가 이리저리 갈려서 시끄럽다. 상처받는 국민은 많은데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부추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

갑작스레 불거진 여성 징병제 논란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자 박용진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느닷없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며 논란을 촉발한 것이다.

여자가 군대 가야 하는 게 맞느냐 틀리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 내내 잠잠했던 여당 의원들이 선거에서 패배하자마자 이 문제를 들고나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젠더 갈등의 불씨를 꺼뜨리기보다는 살리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우리 언론들도 사회에 만연한 분노와 혐오를 해소하기보다는 키우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분노와 혐오의 시대를 끝낼 해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분노 증폭 시스템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던 WSJ도 마땅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WSJ는 ‘분노에 의존하지 않고 성공한 정치인’이라는 사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까지 되게 했던 분노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화합과 치유의 길을 우직하게 걷는 정치인을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다.

분노와 혐오 뒤에 숨은 절망과 좌절도 주시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온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 취직과 내 집 마련 스트레스가 없고 양질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으며 일과 생활의 균형이 확보된 사회라면 분노가 지금보다 훨씬 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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