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햇님달님 부장판사를 아시나요

입력 2021-04-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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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 기자

‘옛 휴대폰 가져오면 신형으로 교환’

휴대폰 대리점 유리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홍보 문구다. 그러나 막상 상담을 받아보면 교환보다 처분이란 단어가 어울린다. 동네마다 ‘모든 메뉴 5900원부터’ 간판이 세워진 음식점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가 보면 막상 먹을 만한 음식은 최소 7000원이 넘는다.

뭐니뭐니 해도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한 것이 면접 탈락 문자메시지다. ‘지원자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지 못해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문자는 내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 회사는 안타까움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단어나 문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을 때 어른이 됐다고 느낀다. 이면에 뭔가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꽤 빈번하게 들 때 사회에 물들었구나 싶다.

최근 법원을 취재하면서 접한 가장 의아했던 단어는 ‘햇님달님’이었다.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의 세대 차이에 관해 얘기를 나누던 중 듣게 된 일종의 은어다. 법관의 세대 차이라는 딱딱한 대화 주제에서 갑자기 등장한 동화 같은 단어에 귀가 번쩍 뜨였다.

'햇님달님'은 후배들을 괴롭히는 부장판사를 지칭한다. 다만 그 괴롭힘의 방식에 따라 햇님파와 달님파가 나뉜다. 햇님 부장은 밝게 빛나서 모두가 해당 부장이 꼰대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햇님 밑의 젊은 판사는 상사 모시기의 고충에 대해 주변의 격려와 위로를 받는다. 반면 달님 부장은 어두운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후배를 괴롭힌다. 달님 밑의 판사는 그 역경과 고난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법조계에는 이미 권위주의적인 부장판사를 빗댄 '벙커'(bunker·골프장 코스 중 모래가 들어 있는 우묵한 곳)라는 은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왜 굳이 햇님달님과 같이 예쁜 단어를 쓸까. “꼰대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를 써야 후환이 없다.” 괴롭히는 상사를 햇님달님으로 불러야 하는 법관 사회. 변하지 않는 경직된 조직 문화를 반영하는 현실적인 답변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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