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주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1조7000억원을 순발행했다. 수요예측에도 3조 원이 몰렸다. 이번주 (22일~28일)만기가 도래하는 2조7000억원의 차환 물량과 금리 상승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선발행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
회사채 시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SK머티리얼즈는 25일 3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당초 1500억 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이었지만 기관투자자 대상 사전청약에서 1조3600억 원어치 매수 주문이 쏟아지면서 발행액을 두 배 늘렸다.
지난 9일 진행한 LG 회사채 수요예측에는 총 2조5600억 원의 기관 투자자 자금이 쏠리면서 자금 조달 규모를 기존 6000억 원에서 1조 2000억 원으로 대폭 늘렸다.
현대자동차는 이달 초 3000억 원 규모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2조 원이 넘게 몰려 발행액을 4000억원으로 늘렸다. 기아도 3000억원 규모의 ESG 채권 발행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최근 기업들은 금리가 낮을 때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는 2.054%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세계 각국의 초저금리 기조 속에 시장 금리는 1년 가까이 2%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결산 공시를 앞두었음에도 회사채 수요예측이 활발한 이유는 인플레이션 기대 등에 따른 시장금리의 상승이 기업들의 조달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관 자금이 몰리는 것을 감안하면 자금조달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로 인한 금리 상승은 발행 강세를 상쇄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시장 분위기도 좋다. 최근 기업의 회사채 발행이 흥행한 데는 발행사(공급)와 투자자(수요)의 ‘입맛’이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서둘러 발행한 회사채는 신규 운용자금을 손에 쥔 기관투자들이 사들이고 있다.
또 기업이 발행하는 ESG 채권도 기관의 자금을 끌어오고 있다. 실제 기관투자자의 ‘형님’ 격인 국민연금은 내년까지 전체 자산의 절반을 ESG 관련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돼 소위 대박이 터진 곳이 최근 SK하이닉스·LG화학·현대차가 발행한 ESG채권이다.
이경록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ESG가 경영의 화두가 되면서 일반기업들의 ESG채권 수요예측이 크게 늘었다”면서 “작년만 해도 희귀했던 ESG 회사채가 올해는 1월에만 1조원이 넘었고 회사채 수요예측의 20% 내외를 차지했는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채 금리 상승(인플레이션 우려)이 지속되면 조달 비용이 걱정이다. 장기적으로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도 걱정이다. 그동안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온 SK(AA+), 삼성증권(AA+), NAVER(AA+) 등 상위등급 기업 회새차는 민평수준보다 금리가 높게 결정됐다.
김 연구원은 “높아진 금리와 낮아진 스프레드로 인해 크레딧시장에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면서 “특히 지난 연말부터 축소되기 시작해 연중 최저 수준을 갱신한 이후 AA급 회사·여전채(3년 기준)는 레벨 부담을 느끼며 추가적인 스프레드 축소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