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은 혁신 기술의 발전과 감염병 위기로 경영 환경 변화에 가속이 붙자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운신의 폭은 오히려 좁아지고 있다. 반기업 정서에 기반을 둔 규제 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합 위기에 기업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규제 만능주의 풍토에 맞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사회적 역할도 균형 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 역할을 주도적으로 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우태희 상근부회장을 이투데이가 만나 우리 경제가 당면한 과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우 부회장은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에 대해 “어떤 법안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법안이 다 걱정”이라며 “경제에 영향을 미칠 법안들인데 정치적으로 처리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우 부회장은 “이미 통과된 법에 대해서는 기업대상 설명회를 개최하고, 시행령 등으로 구체화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며 “계류 중인 법안은 향후 국회 논의 시 업계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면서 국회와 이견을 조율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화두로 떠오른 ‘이익공유제’에 관해서도 우 부회장은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우 부회장은 “최근 국회에서 제·개정된 기업관련 법률로 피로감이 큰데 또다시 갈등과 논란 소지 있는 이익공유제 추진에 기업들이 혼란스럽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양극화 해소라는 취지를 이해하나 올바른 방법을 통해야 효과 발휘가 가능하다”며 “손실보상제와 사회연대기금 조성은 아직 구체적 방안 없어 별개로 하더라도 협력이익공유제는 오래 논의됐으나 기여도 계산 등 현실적 문제가 많고 기업 간 협력을 저해할 수 있어 기업들이 공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 부회장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지만 우리 풍토에서 순수한 자발적 참여가 가능할지 회의적”이라며 “상생과 협력은 법과 제도로 접근하기보다 자율규범으로 세워질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잇달아 반(反)기업 정서에 기반한 법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이를 반전하기 위해선 기업들의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왔다. 법보다 높은 수준의 규범을 만들어 실천하는 자세를 보이는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 부회장은 “기업을 규제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에도 기인한다”며 “기업에 대한 신뢰가 낮아 규제를 통해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기업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며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기업의 노력도 있겠지만, 사회가 기회를 준 측면도 크니까 기업이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같이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우 부회장은 이러한 최악의 규제 환경 속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낡은 법제에 대한 대대적 개혁과 기존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시급한 것은 산업화시대에 맞춰진 낡은 법제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속화된 글로벌 산업 변화 속에서 골든타임을 놓쳐 우리만 감당 못 할 수준까지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우 부회장은 법제 개혁을 위해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규제 입법 영향 평가제 도입 두 가지를 제안했다.
우 부회장은 “기존에 상상할 수 없었던 기술과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모든 사업의 가능성과 가치를 일일이 이해하고 허용 여부를 판단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국민 생명·안전에 문제 되는 것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일을 벌일 수 있게’ 허용하는‘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규제 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도한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점검해야 한다”며 “의원입법 비중이 정부입법보다 현저히 많은 것은 물론 ‘규제영향 평가’를 거치는 정부입법과 달리 의원입법에선 별도의 영향 점검 절차가 부재하다”고 지적하면서 규제 입법 영향 평가제 도입을 주장했다.
실제로 의원입법 비중은 17대 국회에선 정부입법의 5.2배에 불과했으나, 20대 국회에선 19.7배에 달했다.
이러한 낡은 법제 개혁 노력을 통해 우 부회장은 “‘제2의 이병철, 정주영’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는 샌드박스 지원센터를 통해 낡은 법제도, 기득권에 막힌 혁신 사업모델의 시장 출시를 지원하고 있다.
그는 “샌드박스는 ‘임시로’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라며 “특례 승인과제가 약 400건에 이르지만 후속 법령의 정비가 없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공 스토리’가 많이 쌓이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선진적 경영의 프랙티스(Practice)가 쌓이면 기업의 창의성도 증진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우 부회장은 규제 개혁과 함께 올해 산업의 최대 당면과제로 탄소 중립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디지털전환(DT)을 꼽았다.
우 부회장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탄소 중립의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국내 산업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탄력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탄소 중립은 탄소를 100% 줄이는 것으로 이는 반도체 같은 제조업을 아예 하지 말라는 의미”라며 “제조업을 하는 나라가 그렇게 빨리 전환을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건 기업이 일단 살아야 논할 수 있는 것”이라며 “상의가 기업들이 관련 투자를 하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할 테지만, 정부도 기술개발 지원과 함께 (탄소 중립에)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 부회장은 ‘ESG 경영’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이미 ESG경영은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필수요소가 되고 있으며, 기업의 수주와 납품, 투자유치, 자금조달, 마케팅 등 기업활동 전반에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며 “일부 대기업의 영역으로만 인식되던 ESG 경영은 이젠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이 이행해야 하는 필수 영역이 됐다”고 설명했다.
2018년 대한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기업의 절반 이상(54%)이 제품의 수출·납품 과정에서 글로벌 고객사에 ESG 관련 평가를 요구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받는 기업 5곳 중 1곳(19.1%)은 이를 통과하지 못해 거래중지, 계약비율 축소 등 수출에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 부회장은 국내 산업의 장기 전망에 대해서는 “코로나19부터 미국 신정부 출범까지 향후 국내 경제와 산업 방향을 결정할 많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만큼 산업의 변화 규모와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이 강력한 시동을 걸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 부회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GVC 다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확인했고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구체적인 정책들이 추진 될 예정”이라며 “또한, 중국이 경제정책 방향을 수출에서 소비로 전환하며 앞으로 점차 중국의 GVC 비중은 줄어들고 아세안 국가들의 비중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우 부회장은 국내 기업들도 디지털 전환(DT) 속도를 높여 미래 첨단기술 분야의 GVC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데이터 활용인데 현재 국내기업 데이터 활용은 부진한 편”이라며 “기업들의 DT 사례는 나오고 있는데 아직 기준이 없어 평가가 안 되고 있어 현재 위치를 모른다”고 했다. 현재 상의는 DT를 가속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