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세상은 참 아름답고 신기하다, ‘벌새’

입력 2021-01-14 17:34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요즘 아이들은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까?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에 겪어 낸 팬데믹은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상처로 남겨질까? 특히 불운했던 작년 대학 신입생들은 동기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신입생 환영회도, 봄날의 축제도 경험하지 못했다. 이들에겐 2020년은 어쩌면 그저 잃어버린 1년이었다. 청년기의 일 년은 성인의 그것보다 열 배의 추억과 기억으로 간직된다고 한다.

‘벌새’는 한 소녀의 보잘것없지만 보편적이며 순간적이었지만 찬란했던 추억과 기억의 저편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다. 스웨덴 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을 얼핏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 역시 열두 살 소년 잉마르의 성장기와 그 과정의 아픔을 치유해 내는 영화였다. 다만 ‘벌새’가 이 영화와 다른 점은 굳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시간을 감내하며 흐르기를 기다려낸다. 그런 톤엔 매너(분위기)라면 대만 감독 허우 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과 오히려 가까워 보인다.

이렇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나름의 명작들과 ‘벌새’를 대등하게 비교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유는 일단 수상 실적으로도 변명이 된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 수상을 포함하여 국내 백상, 대종상 등 총 25개의 상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렇다고 엄청난 시각적 쾌감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벌새’는 충족을 위함이 아니라 그저 멍 때리기 위한 영화이니까.

벌새는 1초에 적게는 19번, 많게는 90번 날갯짓하는 몸집이 자그마한 새다. 1994년은 큰 사건이 많았다. 김일성이 죽었고, 유례없는 폭염이 있었고, 그리고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중학교 2학년 은희(박지후)는 이 시절을 ‘수십번 날갯짓’ 하면서 살아낸다. 죽일 듯 싸우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는 부모님,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수험생 오빠, 겁 없이 남자친구를 방에 데리고 와 재워주는 언니의 ‘비행’ 속에서도 단짝 친구와 남자친구, 자신을 좋아하는 후배가 삶의 소소한 행복들이다.

주인공 은희의 눈에 비친 1994년의 서울과 대한민국 풍경은 지금 보면 낯설기도 혹은 친근하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무너져 버린 성수대교를 한강변에서 지켜보면서 자신의 멘토였던 학원 선생님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은희는 기억해 낸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아름답고 신기하다.”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코스피 역행하는 코스닥…공모 성적 부진까지 ‘속수무책’
  • "100% 급발진" vs "가능성 0"…다시 떠오른 고령자 면허 자격 논란 [이슈크래커]
  • 단독 북유럽 3대 커피 ‘푸글렌’, 한국 상륙…마포 상수동에 1호점
  • '나는 솔로' 이상의 도파민…영화 넘어 연프까지 진출한 '무당들'? [이슈크래커]
  • 임영웅, 가수 아닌 배우로 '열연'…'인 악토버' 6일 쿠팡플레이·티빙서 공개
  • 허웅 전 여친, 박수홍 담당 변호사 선임…"참을 수 없는 분노"
  • 대출조이기 본격화…2단계 DSR 늦춰지자 금리 인상 꺼내든 은행[빚 폭탄 경고음]
  • 편의점 만족도 1위는 'GS25'…꼴찌는? [데이터클립]
  • 오늘의 상승종목

  • 07.0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85,437,000
    • -2.33%
    • 이더리움
    • 4,675,000
    • -3.01%
    • 비트코인 캐시
    • 531,000
    • -1.21%
    • 리플
    • 662
    • -2.5%
    • 솔라나
    • 200,600
    • -5.51%
    • 에이다
    • 576
    • -1.2%
    • 이오스
    • 796
    • -2.21%
    • 트론
    • 182
    • +0.55%
    • 스텔라루멘
    • 128
    • -2.29%
    • 비트코인에스브이
    • 60,600
    • -2.88%
    • 체인링크
    • 19,760
    • -2.9%
    • 샌드박스
    • 448
    • -2.4%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