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의 첫 번째 차원은 생활고에 대응하지 못하는 정책의 문제다. 방배동 모자는 월 24만 원가량의 주거급여만 신청해 받아왔다. 송파 세 모녀나 증평 모녀 사건과는 달리, 방배동 모자가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들의 장애가 확인되었다면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장애등록을 하지 않아 지원을 받지 못했다. 기초생활제도에 의해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도 받을 수 있었지만, 부양의무자인 딸과 함께 사는 전남편에게 처지가 알려지는 것을 꺼려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사회적 비극이라고 규정하고, 대통령의 공약대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신속히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큰 틀에서 제도적 해결책의 방향은 맞더라도, 이 문제의 원인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사실 현재 제도 내에서도 이 모자가 생계급여를 받는 것은 가능했다. 가족관계 단절 사유서를 쓰면, 구청 생활보장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부양의무자와 관계없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복지 정보가 정확하고 충분하게 안내되고 필요한 이들에게 잘 연결되고 있는지 진단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차원은 반년 넘게 방치된 고독사로 드러난 위기발굴시스템의 한계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을 가동해오고 있다. 다양한 생활정보를 분석해 단전, 단수, 건보료 체납 등 3개 이상의 정보가 포착되면 위기가구로 발굴되어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방배동 모자는 ‘이미 발굴된’ 위기가구로 인식되어 시스템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의 대상은 취약계층에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어야겠지만, 그렇더라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거나 정보가 확보되지 않은 아동이나 잦은 이사로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은 가구가 누락되기 쉬운 본질적인 시스템의 한계는 여전히 남는다.
제도와 시스템 탓으로만 비극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정책을 통해 동사무소에는 방배동 모자 가구에 대한 수십 회의 상담기록이 남아 있었지만,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를 극도로 회피한 어머니에게 좀 더 마음으로 다가가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상담은 결과적으로 제공되지 못했다. 우편함에 고지서가 수북하게 쌓이고 마스크가 택배로 배달되어 문 앞에 몇 달 동안 방치되었지만 누구도 문제를 감지하지 못했다. 장애인 아들은 몇 달 동안 길에서 노숙하며 엄마의 죽음을 알리고 싶어 했지만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이 그 앞을 그저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지나쳤을 뿐이다. 복지관 직원도 동사무소 공무원도 아닌, 어느 직장에도 소속되지 않은 한 사회복지사가 그의 위험을 알아보고 말을 건네고, 한 달 동안 신뢰를 쌓고, 식당에 데려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한 자리에서야 비로소 이 모자의 소외되고 고단한 삶의 전말이 뒤늦게나마 세상에 드러났다.
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안전망의 문턱을 낮추고, 위기발굴시스템을 더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과 자동 시스템만으로는 절반의 해결에 불과하다. 취약계층을 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살필 수 있도록 현장 복지인력을 확충해 사례 관리를 강화하고, 정책 지원 시 가정방문의 동의를 구해 필요한 생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배동 모자 사건을 인지한 정미경 사회복지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민들에 대한 부탁을 잊지 않았다. 주위에 위기에 처한 이를 보면 24시간 어느 때라도 129를 눌러 보건복지부 콜센터에 알려 달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도 남도 믿지 못할 만큼 마음이 병들고 상처 입은, 위기에 처한 수많은 이들이 대인관계를 기피한 채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 극복에 동참하기 위해 자발적 자가격리를 실천하는 차분한 연말, 차가운 사각지대에서 조용히 외롭게 죽어간 분들을 마음 깊이 추모하며, 새해에는 따뜻한 제도와 실천을 통해 신뢰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