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역사학자는 “역사는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하였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마치 어떤 섭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끊임없이 도전하고 해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인정해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의 발자취에 새겨져 있는 수많은 과정도 존중해야 한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그리고 산업혁명이 마치 하나의 연결성을 가지고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예측할 수 없는 투쟁과 타협의 연속이었다. 역사 속에 스며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가 없다.
새롭게 들어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한 변화 중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역시 기후변화 문제일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탈퇴 선언으로 지난 4년 동안 횡보할 수밖에 없었던 파리기후변화협약(Paris Climate Agreement)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2015년 12월 체결된 협약에서 세계 195개국은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를 1.5도 이상 올리지 않기 위해 각각의 방식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자발적 공헌 약속(INDC : 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을 했다. 더불어 모든 국가는 이러한 감축 노력을 점점 더 확대해야 한다는 약속도 협약에 명시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국가는 국제 사회의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원칙(Name and Shame)에도 동의했다. 이제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왔다.
최근 우리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기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전기 수요가 많아지면 전기를 만드는 연료도 더 다양해져야 한다. 석탄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신기술을 활용해야 하고, 천연가스도 더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늘어나는 전기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에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원자력을 탄소중립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원자력에 대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원자력의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도 신재생 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물품의 교역만을 허락하는 원칙(RE 100 : Renewable 100)을 대신하여 탄소중립을 입증하는 원칙(CF100 : Carbon Free 100)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제조업이 국가경제의 주축인 우리로서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에 걸맞게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명분과 더불어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절박함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좌초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위기감을 바탕으로 기후변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념을 넘어서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구호만을 외치는 것을 넘어서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행동에 옮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