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서로를 케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보다 못한 자식이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도와줄 형제도 마땅치 않아 혼자 부모 돌봄을 떠맡아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다가, 장기요양돌봄을 제공해주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고, 사회복지사가 와서 어머니의 제반 상태를 점검하고,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등급 판정을 받으시기까지 약 한 달이 걸렸다.
장기요양급여를 받게 되면서 이제 동료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 집앞까지 오는 셔틀을 타고 노인주간보호센터에 가신다. 비슷한 상황의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도 하시고, 재활치료와 인지교육을 받으면서 보호받으시는 동안, 집에 계신 아버지는 몸을 추스르고 천천히 병원도 다녀오실 수 있게 됐다. 저녁엔 요양보호사가 집에 방문하여 두 시간을 더 챙겨준다. 앞으로 혹시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재가요양이 여의치 않게 될 때를 대비해서, 좋은 요양원을 수소문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도 올려놨다. 이렇게 해서 편찮으신 부모님 두 분이 한 집에서 생활하실 수 있는 재가요양 체계가 갖춰지고 나서야 동료는 좀 살 것 같더라고 했다. 같은 층에 지내면서도, 동료가 힘든 시기를 지난 후에야 얘기를 처음 듣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까? 2019년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에 따르면, 동료의 어머니처럼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 노인은 약 77만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9.6%에 달하고, 해마다 15% 이상 증가하고 있다. 노인 돌봄의 부담을 크게 덜게 되는 가족들까지 고려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수혜자는 수백만 명인 셈이다.
이 제도는 65세 이상의 노인, 혹은 치매나 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이 있는 분이 장기간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 장기요양기관으로부터 신체활동이나 가사활동 지원 등의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장기요양은 한번 발생하면 임종 때까지 긴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노동강도가 높기 때문에, 개별 가정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다. 소득계층과 관계없이 이 제도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신청한다고 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증이 아니면 서비스를 받기 어렵고, 요양등급을 받고 나서도 어느 재가방문요양센터에 연락을 해야 할지, 혹은 어느 요양시설을 선택해야 할지 정보를 모으는 일도 여전히 개별 가족의 쉽지 않은 몫이다. 다들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소득이 있는 모든 국민은 이 제도에 매달 보험료도 내고 있다. 2020년 국민장기요양보험의 보험료율은 국민건강보험료의 10.25%으로, 가입자 세대당 평균 1만1424원이다. 내년에는 보험료율이 11.52%로 인상된다. 곧 다가오는 2026년에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를 맞는 상황에서, 노인에 대한 돌봄 수요와 재정은 매년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노인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노후의 존엄한 삶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급격한 고령화를 감당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서구의 대응은 어떠할까. 스웨덴은 오랫동안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의료와 복지서비스 혜택을 주는 보편적 정책을 펴왔다. 거동이 힘든 노인은 환자로 인식되었고 요양시설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그러다가 1992년 에델개혁을 통해 80세 이상의 후기고령자에게 중점적으로 복지서비스 혜택을 부여하되, 자기 집에서 요양보호를 받는 재가 요양으로 정책방향을 전면 전환했다. 의료·간병서비스를 일원화하면서 비싼 의료서비스 대신 요양간호서비스를 대폭 늘려 더 많은 노인이 손쉽게 서비스를 받도록 했다. 같은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건강한 노인은 파트타임으로 돌봄이 필요한 후기노인의 돌봄에 참여해 수당을 받는다. 우리처럼 장기요양보험을 운영하는 독일과 일본은 보험을 통해 거동이 불편해지는 노인들에게 노인친화적으로 주거를 개조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살던 집에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증노인이 되기 전부터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돌봄의 혜택을 늘리는 동시에 예방과 자립생활을 유도해 장기적으로 재정을 절감하고자 한다.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는 사회복지가 소수의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라는 기존의 사고틀을 완전히 깨뜨리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주기에서 마주하는 유사한 과제를 혼자의 문제인 것처럼 각자 무겁게 짊어지고 외롭게 살아갈 일이 아니다. 복지국가는 우리가 살아가며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공통된 필요를 공동으로 해결해가는 대화의 장이다. 그 대화의 시작은 오늘 옆사람에게 부모님은 안녕하신지 안부를 건네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