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 칼럼] 한국판 뉴딜에 대한 노파심

입력 2020-09-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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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마이라이프 대표

‘뉴딜(New Deal)’은 좌파의 언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원래는 포커판의 용어였다. 카드를 새로 섞어 돌린다는 뜻이다. 이 용어가 정치판에 처음 등장한 것은 미국의 7대 대통령(1828~1837) 앤드루 잭슨 때다.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내세웠던 잭슨 민주주의의 그 잭슨이다. 그는 재임 중 정쟁으로 떠오른 중앙은행(뱅크 오브 US)의 재인가에 부정적이었다. 중앙은행이 부자들과 대기업의 이익만 대변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잭슨은 이런 자신의 입장을 ‘new bank, new deal’이라는 슬로건으로 압축했다.

그로부터 약 100년 뒤 뉴딜은 새로운 의미가 가미된다. 스튜어트 체이스라는 경제학자에 의해서다. 헨리 조지 등으로부터 사상적 세례를 받은 그는 1932년 ‘뉴딜’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처방이라는 의미였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즐거움을 왜 소련이 독점해야 하는가?”였다. 체이스는 당시만 해도 한창 실험단계였던 소련식 사회주의를 동경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1950년대 초에는 소련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자로 돌아선다)

그리고 이 책 제목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키워드가 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후보지명 수락 연설에서 ‘a new deal for the American people’을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체이스가 루스벨트의 싱크탱크인 ‘브레인 트러스트’에 참여했던 점이 연결고리다. 당연히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좌파의 색채가 짙었다. 밀튼 프리드먼 등 자유경쟁시장 신봉자들이 뉴딜을 강력히 비판했던 것은 그래서다.

이런 사연을 지닌 뉴딜은 한국에도 이식됐다. 역시나 좌파 성향의 정권에 의해서다. 김대중 정부 때 정보 인프라 구축을 주 내용으로 한 ‘사이버코리아21’에 첫 ‘한국판 뉴딜’이라는 간판이 걸렸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도 기업도시 건설 등의 정책에 뉴딜 간판을 달았다.

이번엔 문재인 정부가 7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 등을 3대 축으로 19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는 내용이다. 3일에는 한국판 뉴딜을 뒷받침할 20조 원의 뉴딜펀드 조성과 170조 원의 뉴딜금융 지원대책도 발표됐다.

정부의 이런 의지에 이념 문제 따위로 시비를 걸 여유는 없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의 거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의 야심찬 구상에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은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자칫 버블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다. 과거의 경험이 그 근거다. 김대중 정부 때는 벤처기업에 대한 눈 먼 돈 풀기의 자금지원이, 노무현 정부 때는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벤처 버블, 부동산 버블을 야기했다. 항간에 화제가 된 홍콩계 증권사 CLSA의 보고서도 이런 우려와 시각을 같이한다. ‘Moon’s Debut as a fund manager(문 대통령의 펀드매니저 데뷔)’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그렇지 않아도 시장에서 끓고 있는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성장주에 정부가 기름을 부었다고 꼬집었다. 뉴딜펀드가 ‘큰 거품(big bubble)’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문제는 뉴딜 프로젝트가 민간의 자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170조 원 규모의 뉴딜금융을 두고 정부의 ‘팔목 비틀기’식 관치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권에서는 벌써 주요 금융사 CEO(최고경영자)들의 연임 또는 징계 문제와 뉴딜금융 참여를 연결지어 수군거리는 소리도 많다. 관치금융의 유혹은 금융자원 배분의 왜곡과 금융산업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뉴딜펀드의 손실보전에 대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지적한다.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번에는 후유증 없는 뉴딜을 실현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판 뉴딜 대신 ‘문재인 뉴딜’로 간판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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