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셋값이 안 오른 곳이 있나요. 그렇잖아도 전세 물량이 없는 와중에 전셋값 인상 폭과 임대 기간 설정에 제약이 생긴 집주인들이 전세를 거둬들이거나, 실거주를 주장하면서 대단지에도 전세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서울 강남구 대치동 L공인 관계자)
서울 전역에서 아파트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 전셋집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다 보니 콧대가 높아진 집주인들은 연일 전셋값을 밀어올리고 있다. 하룻밤 새 수 천만원씩 뛰는 건 이제 예삿일이다. 서민 주거의 안정장치로 여당이 강행한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이 오히려 애꿎은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유탄이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차법 시행 후 '전세 가뭄' 극심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 대치팰리스 1단지'(총 1278가구)엔 전세 물건이 13일 기준 고작 한 건에 불과하다. 인근 L공인 측은 "1000가구 넘는 대단지인데도 전세 물건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며 "그나마 한 건 나와 있는 게 전용면적 59㎡형으로 전세 매물이 워낙 귀하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라고 전했다.
대규모 단지로 올해 말로 입주 2년차를 맞는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총 9510가구)도 전세 물건이 10여건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지 중개업소들의 전언이다. 가락동 한 공인중개사는 "입주 때 들어갔던 전세가 이제 매물로 나오기 시작할 때인데, 계약갱신청구권이 생겨 대부분 눌러앉는 분위기"라며 "2년 전 전용 84㎡형 전세보증금이 6억∼6억50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10억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 그라시움' 전용 59㎡형은 전셋값이 7억5000만 원을 호가한다. 지난해 11월 입주 당시 4억 원을 조금 넘겼던 전셋값이 입주 1년도 되지 않아 3억 원 넘게 오른 것이다.
고덕동 Y공인 관계자는 "고덕지구 새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내달 입주할 '고덕 센트럴 푸르지오'의 경우 전셋값이 분양가를 추월하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실제 고덕 센트럴 푸르지오 전용 59㎡형 전셋값은 현재 6억 원 선으로 분양가(6억5000만 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통상 새 아파트 입주 시점엔 전세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시세 대비 전셋값이 낮게 매겨진다. 집주인이 잔금을 치를 목적으로 전세를 놓는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최근 전세시장은 곳곳이 품귀현상으로 몸살을 앓다보니 이같은 공식마저 깨지고 있다.
◇입주 아파트 전셋값, 분양가 추월도… "임대차 정책 방향 전환해야"
전셋값이 분양가를 누르는 역전현상은 강북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2017년 분양한 서울 중랑구 면목동 '사가정센트럴아이파크' 전용 59㎡형은 분양 당시 4억7200만∼5억400만 원 수준에 공급됐다. 그러나 지난 1일 5억7000만 원에 전세 거래가 체결됐다. 전셋값이 분양가보다 1억 원이나 높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힐스테이트신촌' 전용 42㎡형도 분양가(3억9000만∼4억1500만 원)을 크게 뛰어 넘어 최근 최고 5억2000만 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전셋값 폭주는 전세 매물 부족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 때문이다. 최근 서울 전세시장은 저금리 장기화와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 상승, 집주인들의 실거주를 강화한 정부 규제 등으로 전세난이 가시화될 조짐을 보였다. 여기다 지난달 말 여당이 강행한 임대차법 소용돌이에 전세시장은 물량 급감과 가격 급등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4% 올랐다. 주간 기준으로 보면 59주 연속 상승세다. 계절적 비수기와 장마 등의 영향으로 전주(0.17%)보다는 상승세가 다소 둔화했지만, 여전히 0.10% 넘는 오름폭을 이어갔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전세 매물이 없어 수급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는데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크게 높여 불러 가격이 불안한 상태"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새로 전셋집을 구해야하는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폭등한 전셋값을 받아들이거나 주거비 부담이 큰 반전세, 월세를 택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임대차 정책의 방향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