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중국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병원 내 감염을 두려워하는 중국인들이 병원 대신 자주 찾는 곳이 생겼다. 바로 핑안굿닥터(平安好醫生)가 3500곳이 넘는 병원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확보한 7000여 명의 의사, 그리고 1만5000여 곳의 약국과 협력하여 구축한 ‘무인 AI(인공지능) 진료소’이다. 핑안굿닥터는 2014년 8월 설립된 중국 최대 인터넷 의료 플랫폼 회사로 누적 방문객 수가 이미 11억5000만 명을 넘어선 상태이다. 무인 AI 진료소는 1평 남짓 크기의 무인 진찰실에서 체온과 혈압을 체크할 수 있고, 기타 증상에 대해서는 연결된 의료진을 통해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 담당의사는 코로나 의심 환자의 경우 AI 의사를 통해 해당 환자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코로나 지정 선별안내소를 안내하고, 기타 질환의 경우 복용할 수 있는 약을 추천한다. 방문자는 무인 AI 진료소 옆 자판기를 통해 바로 약을 구입할 수 있다. 만약 여기에 해당 약이 없을 경우 핑안굿닥터 앱을 통해 주문하면 1시간 내로 집으로 배송해 준다.
중국 원격진료 기술의 발전 역사는 길지 않지만, 그 성장속도는 매우 빠르다. 2013년 ‘원격의료기술발전계획’을 발표했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작년 3월부터는 의료 인프라가 떨어진 시골지역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화웨이가 차이나모바일과 협력하여 원격수술을 위한 5G(5세대 이동통신) 인프라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실제 루게릭병·파킨스병 등 많은 희소병 환자에 대한 원격시술이 진행되고 있다. 2019년 기준 1억 명이 넘는 중국인이 스마트 원격진료를 받았고, 특히 지난 2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우한의 경우 5G 원격진료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또한 작년부터 중국 지방정부는 차이나텔레콤 등 통신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5G 원격의료시스템을 구축하여 2000㎞ 떨어진 시골 병원에서 초음파 영상을 베이징으로 전송하고, 베이징 전문의가 원격진료를 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지난 4년간 진행한 원격진료 데이터와 기술이 축적되면서 중국의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은 점차 고도화하고 있다. 올해 시장 규모도 360억 위안(약 6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지난 3월 초부터 우한 우창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는 2차 감염을 줄이기 위해 약품·식품 배달, 소독 및 오염물 처리, 자가격리 모니터링, 격리된 환자와의 원격 의사소통 등의 업무를 의료용 로봇이 전담하고 있다. 게다가 달 탐사 로봇과 우주정거장 로봇에 응용되고 있는 로봇 팔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원격 환자진단 로봇을 우한시 병원에 투입하여 중국 내 코로나19 확진 검사에도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한국이 지난 20년 동안 원격진료 허가를 두고 지루한 논쟁을 지속하는 동안 중국의 원격진료기술은 일취월장하고 있다. 5G 원격수술은 차세대 통신기술과 최첨단 의료기술이 융합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성장분야이다.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한국도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전화 진료 등 원격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의료법에 막혀 합법적인 원격진료가 언제 가능할지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중국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촉매제로 세계 최고의 디지털 헬스케어 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축적된 헬스케어 빅데이터와 스마트의료 기술을 최적화함으로써 중국의 스마트 헬스케어 기술역량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원격의료 시스템과 기술, 통신 인프라, 의료진이 있지만 각종 규제와 제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사이, 중국은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다양한 스마트 헬스케어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핵심은 의료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기술 그리고 5G 인프라 구축이다. 중국이 최근 5G 인프라 등 신형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과 정책적 지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