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회사 ‘다스(DAS)’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2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3월 6일 ‘자택 연금’ 수준에 가까운 조건으로 보석이 허가돼 불구속 재판을 받아오던 이 전 대통령은 350일 만에 구치소로 돌아가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1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에게 총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8000여만 원을 선고하고 보석을 취소했다.
대통령 시절 저지른 뇌물 범죄는 형량을 분리해 선고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뇌물죄에 대해서는 징역 12년과 벌금 130억 원을, 횡령과 국고손실 등 나머지 범죄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으로서 공무원의 부패를 막아야 하는 지위에 있다”며 “그러나 지위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고 일반인과 공무원, 사기업에 뇌물을 받는 등 총액이 94억 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법률 회사나 제3자를 통한 수법으로 은밀하게 뇌물을 받고, 삼성이 제공한 뇌물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이 드러난다”며 “2009년 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을 공정하게 행사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갖게 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은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이를 다스와 삼성그룹의 직원, 함께 일한 공무원 등 여러 사람의 허위 진술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명백함에도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를 사실상 소유하면서 회삿돈 349억 원가량을 횡령하고, 삼성전자가 대신 내준 다스의 미국 소송비 119억 원을 포함해 총 163억 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해 5월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이 전 대통령의 추가 뇌물 혐의를 뒷받침하는 제보와 자료를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삼성이 소송비용 명목으로 돈을 더 건넨 정황을 확인하고 51억여 원의 뇌물 혐의액을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1심은 85억여 원의 뇌물 혐의와 247억 원대의 다스 자금 횡령을 포함해 총 16개 혐의 가운데 7개를 유죄로 보고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먼저 다스에서 지급한 선거캠프 직원에 대한 허위 급여와 승용차 구입 부분 약 5억 원의 횡령을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은 공소시효가 지난 것으로 보고 면소 판결을 했지만, 항소심은 포괄일죄(여러 행위가 하나의 죄에 해당하는 것)로 판단해 공소시효가 살아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1심이 인정한 247억 원에서 252억 원 상당으로 횡령액이 늘었다.
삼성이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한 부분도 상당 부분 뇌물로 인정됐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추가로 포함한 51억6000여만 원을 포함해 총 119억 원을 ‘삼성 뇌물’로 파악했는데, 재판부는 이 가운데 89억 원 상당을 뇌물로 판단했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뇌물액수 61억여 원에서 27억여 원 늘어났다.
다만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김소남 전 의원 등에게서 받은 뇌물 인정액은 1심 약 23억1000만 원에서 4억1230만 원으로 약 19억 원 줄었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넘어온 특수활동비 7억 원 가운데 4억 원의 국고손실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뇌물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1심을 유지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2011년 하반기에 전달한 10만 달러(1억 원 상당)는 1심과 같이 유죄로 봤다.
이 밖에도 다스 법인세 31억 원을 포탈한 혐의, 대통령 권한을 이용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에게 차명재산 관련 검토를 시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은 1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
퇴임 후 국가기록원에 넘겨야 할 청와대 생산 문건을 빼돌린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에 위배된다며 1심처럼 공소를 기각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기소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증거능력이 없는 검증되지 않은 증거를 제출해 재판부에 선입견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