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에 한국 관객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봉 감독은 "저는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만들고자 하는 스토리의 본질은 외면하기 싫었다"면서도 "최대한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 솔직하게 그리려 한 것은 대중적인 측면에서 위험해 보일 순 있어도 그게 이 영화가 택한 유일한 길이었다"고 밝혔다.
봉 감독이 블랙코미디를 기반으로 현실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설국열차', '괴물'에서도 빈부 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봉 감독은 "'괴물'과 '설국열차'에는 SF(공상과학)적 요소가 많지만, '기생충'에는 그런 게 없다"며 "동시대 이야기이자, 현실에 기반한 분위기의 톤이라 폭발력을 갖게 된 것 아닌가 스스로 짐작했다"고 말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달성한 영화 '기생충'의 배경에는 '번아웃' 증후군을 이겨냈던 봉 감독의 의지가 있었다. 그는 "'옥자' 끝났을 때 번아웃 판정을 받았다"면서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없는 기세를 영혼까지 긁어모았다"고 고백했다.
봉 감독은 이날 오전 마틴 스콜세지 감독으로부터 '조금만 쉬고 다시 일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노동을 정말 많이 하는 사람인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쉬어볼까 생각했는데 스콜세지 감독이 쉬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봉 감독에게도 한국 영화산업의 불균형은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그는 '플란다스의 개'가 지금 나왔다면 어떤 반응이었겠느냐는 질문에 "해외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해외에서 좋은 한국 작품이 나오는 이유가 뭐냐고 물을 때 저도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를 한다"며 "요즘 젊은 감독이 그런 시나리오를 갖고 왔을 때 '기생충'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시나리오 들고 왔을 때, 과연 투자를 받고 영화가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저는 1999년 데뷔했는데, 20여 년간 눈부신 발전과 함께 젊은 감독이 이상한,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엔 어려워지는 경향이 생겼다"면서 "재능있는 친구들이 산업으로 흡수되기보다 독립영화만 만드는,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이 평행선 이루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2000년대 초 '플란다스 개' '살인의 추억' 때는 메인스트림과 독립영화가 상호 침투했다. 좋은 의미에서의 다이나믹한 충돌들이 있었다"며 "그런 부분의 활력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는 지점이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은 "8090 큰 인기를 끌었던 홍콩 영화가 어떻게 쇠퇴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가 가진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도전적인 영화들을 산업이 껴안아야 하고, 수용해야 한다"며 "최근에 나온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워낙 큰 재능들이 이곳저곳에서 꽃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은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