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산업정책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9-12-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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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의 우환거리로 전락한 미국경제 회생의 길과 한국경제에의 시사점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근까지 세계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주도해오던 미국이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세계경제의 우환거리로 전락하면서 또 다른 미국발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즉 트럼프가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이 초래한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미국 기업의 투자 감소가 현실화하면서, 공급부문 위축에 의한 경기침체 우려와 함께 최근까지 저금리 정책을 통하여 미국 경제를 지탱해왔던 내수 확대의 여력이 거의 소진된 상황이라는 진단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당장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등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이 모든 경제충격의 진앙지 역할을 했던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경제 흔들기에 나섰던 트럼프의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였다. 미국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실제로 미국이 ‘위대한 나라’로 작동했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전까지 미국 정부의 경제·산업정책을 되짚어보면서 향후 미국 경제의 회생을 위하여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혁명적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발전의 모든 과정에서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왔던 사실은, 산업혁명의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던 독일과 프랑스, 미국은 물론 더 늦게 근대화 및 산업화에 뛰어들어 매우 신속하게 추진하였던 일본과 싱가포르, 한국 등에서도 모두 예외가 없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는 미국 경제의 발전과정도 돌이켜보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초기는 물론 20세기에 접어들어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될 때까지 다양한 형태의 산업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례로는 케네디 대통령이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이던 1950년대 미국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던 다수의 단순제조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하여 텍사스 등 남부로 대거 이전했던 과정이 자주 회자된다. 이 당시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단순제조업들이 남부로 이전한 후 산업공동화가 발생할 위기에 처했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새로운 고부가가치산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각종 기술적 지원과 금융 정책은 물론 노동자들의 대한 재교육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이와 같은 정부의 산업정책은 단지 뉴잉글랜드 지역의 산업공동화만을 방지한 것이 아니라, 20세기 후반까지 세계 제조업의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의 기술적 시장지배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와 같이 기업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신자유주의 논리로 밀어붙이며 시장 중심 정책을 펼친 우파 정권조차도 국방·우주산업에 대한 막대한 정부 투자와 지원 및 민간기업과의 협업을 추진하면서, 결국 미국 제조업이 최첨단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다. 강력한 산업정책의 전통은 오마바 행정부까지 이어져서, 실리콘밸리는 물론 미국 전역에 걸친 첨단산업단지에서 초고속 인터넷망 등 기술집약적 정보기술(IT) 산업의 확산에 필수적인 네트워크 인프라망을 기업들에 거의 무료로 제공하였다. 이는 결국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굴지의 기업들이 세계 IT 및 네트워크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산업정책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단기적인 정치적 지지를 노려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단순제조업으로의 회귀를 위한 무역전쟁과 함께 첨단기업 육성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기술전쟁까지 펼치면서,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퇴보시키고 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극단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당초 미국의 조세 및 사회안전망 제도는 사회통합과 건강한 소득 재배분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이었다. 1980년까지 80%에 달했던 연방소득세 최고세율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시작된 감세정책으로 37%까지 떨어져서 누진소득세제가 크게 후퇴하였으며, 계속해서 하락하던 법인소득세율 역시 트럼프가 35%에서 21%로 대폭 인하하였다. 1980년대부터 급속히 진행된 부자감세와 사회안전망 축소정책의 결과,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상위 50% 계층의 소득은 100% 가까이 증가하였으나 하위 50%의 소득은 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심각한 소득 불균형의 결과 노동자 계층의 사회적 불만이 누적되면서 전체적인 노동생산성까지 추가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과 기술경쟁력 퇴보가 지속될 경우 또 다른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의 암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경제회생을 위한 긴급 제안들이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제프리 삭스 교수 등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 제안의 첫째는 진정한 의미의 기술혁신을 위한 산업정책이 미국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가 밀어붙이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단순제조업의 부활을 위한 무역전쟁과 기술전쟁이 아니라 미국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IT 네트워크 산업과 기술집약적 서비스 산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미국의 노동자들을 재교육시키는 산업구조조정 정책이 사회안전망 재구축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를 위하여 무책임한 감세정책이 아니라, 사회통합을 위한 소득 재배분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미국 경제의 회생전략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산업정책의 시대는 끝났으며, 정부의 역할은 규제철폐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실패한 신자유주의 강령을 여전히 암송하고 있는 극우파 정치인과 경제학자들, 또 이들의 비위를 맞춰왔던 경제관료들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없다. 건강한 사회안전망을 바탕으로 기술혁신 촉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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