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의 바이오시밀러가 2020년 일제히 미국 시장에 출시된다. 진입 문턱이 높은 미국에서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얼마나 영향력을 넓힐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미국 시장에 진입할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는 총 5개 제품이다. 국산 바이오시밀러 대표 주자인 셀트리온의 ‘허쥬마’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온트루잔트’가 다국적제약사 마일란/바이오콘의 ‘오기브리’, 화이자의 ‘트라지메라’, 암젠/엘러간의 ‘칸진티’와 격돌을 벌일 전망이다.
허셉틴은 제넨테크가 개발하고 로슈가 판매하는 유방암 치료제로 199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판매 승인을 획득했다. 종양의 성장에 관여하는 HER2 유전인자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표적항암제로, HER2 유전자가 과발현한 전이성 및 조기 유방암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70억9200만 달러(약 8조3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이 사활을 거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허셉틴 시장이다. 2018년 시장 규모는 29억7300만 달러(약 3조4000억 원)에 달한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이미 제품을 팔고 있는 유럽 시장의 2배에 가까운 규모다.
미국에서는 18세 이상 여성의 약 0.2%(2018년 기준 23만5000명)가 매년 유방암 진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셉틴은 20년 동안 효과를 검증받으면서 유방암의 글로벌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장에서 오리지널 의약품 수요의 10%만 확보해도 연간 3000억 원 이상의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한다. 많은 기업이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그러나 미국 시장은 국산 바이오시밀러가 쾌속 성장하는 유럽과 사정이 다르다. 유럽은 입찰 방식의 정부 조달 시장이다. 재정 절감을 위해서는 바이오시밀러 도입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제약사와 보험약제관리사(PBM), 보험사의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이들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는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가격이 낮게 책정될 바이오시밀러를 굳이 처방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유럽에서 오리지널 의약품 ‘레미케이드’의 시장 점유율을 뛰어넘은 셀트리온의 ‘램시마(미국명 인플렉트라)’는 미국에서 출시한지 2년 반이 넘었지만 한 자릿수 점유율로 고전하고 있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의 바이오시밀러 처방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17.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9%)보다 훨씬 높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와 의회는 약가 인하 정책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 사보험사들이 처방의약품 목록에 바이오시밀러를 확대하고 있는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최대 보험사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 헬스케어가 처방목록을 바이오시밀러로 전환하고 램시마와 칸진티 등을 선호의약품으로 등재한 것이 그 예시다.
내년 1분기 허쥬마의 미국 출시를 앞둔 셀트리온은 업계에서 이례적인 3년 장기 임상 결과를 발표하는 등 효능과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22개국 500여 명의 임상 환자를 대상으로 다년간 축적한 임상 데이터로 의료진에게 바이오시밀러를 처방할 동기를 부여한다는 전략이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3월 주주총회에서 “허쥬마의 판매를 직접 진두지휘해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쳐 램시마보다 빠르게 (미국 시장에) 침투하겠다”고 자신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비슷한 시기 파트너사 MSD를 통해 온트루잔트를 내놓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암제는 생명에 직결되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보다 점유율을 빨리 확대할 수 있다”면서 “다수의 바이오시밀러가 동시에 시장에 나오는 만큼 마케팅 역량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