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 정부의 한국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명단·백색국가) 배제라는 부당한 경제보복에 맞대응하기로 해 일본에 취할 수 있는 상응조치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4일 “정부는 일본과의 맞대응 악순환을 원치 않지만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선 이상 우리가 그간 준비해온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정부가 꺼낸 상응조치는 우리나라에서 운용하는 전략물자 수출 통제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것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현지로 가는 한국산 수출 품목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전략물자 수출통제 품목은 1735개이며 각 국가를 우방국가 그룹인 ‘가’ 지역과 나머지 국가 그룹인 ‘나’ 지역으로 분류해 운용하고 있다. ‘가’ 지역은 바세나르체제(WA) 등 4대 국제 수출통제 체제에 가입한 29개 국가로 일본을 비롯한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덴마크, 스위스, 호주, 뉴질랜드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국가에 수출할 때 서류면제·처리기한 단축 등 심사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일반기업의 경우 전략물자판정서와 영업증명서 등 2개 내외의 서류만 제출하면 5일 이내에 허가해준다.
반면 ‘나’ 지역은 계약서, 전략물자판정서 등 6개 내외의 서류 제출이 필요하고, 허가기한은 15일이다. 정부는 ‘나’ 지역보다 심사 규정이 까다로운 ‘다’ 지역을 신설해 일본을 해당 지역으로 편입시킨다는 방침이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선임연구원은 “일본이 대일(對日)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소재를 골라 규제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전략물자 통제 품목 중 일본 기업에 크게 부담을 줄 수 있는 품목을 추려내 수출 규제를 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니와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이 제품 생산을 위해 주로 많이 이용하는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D램·낸드플래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과 철강 제품의 수출을 규제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이와 함께 일방적으로 일본이 무역흑자를 내는 일본산 자동차의 수입 절차를 까다롭게 한다거나 관세를 인상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꼽힌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일본 자동차 수입액은 11억9130만 달러(1조4000억 원)에 달하지만 한국에서 수출한 금액은 395만 달러(46억 원)에 불과하다. 일본과의 자동차 교역에서 1조400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카드는 미국 측이 한미일 안보협력에 우려된다는 뜻을 나타낸 만큼 당장 맞대응 카드로 사용하기에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의 시행이 오는 28일 돼 있는데 일본에 지소미아 파기 의사 통보해야 하는 시기는 이보다 나흘 앞선 24일이다. 결국 정부는 마지막까지 외교 노력을 펼친 후 막판까지 파기 여부를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일본이 한국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식품 등 소비재에 대한 위생검역 및 인증 강화를 비롯해 관광 인허가 강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것도 정부의 대응 방안으로 꼽힌다.
다만 이러한 상응조치가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우리나라를 제소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상응조치가 자칫 양국 간 경제보복전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 양국이 지속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병기 선임연구원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가 아직 금수조치가 아닌 이상 일단은 수출 규제 품목이 심사기간(90일 이내)에 우리 기업에 공급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와 협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일본의 자유무역을 훼손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비판해야 하지만 우리도 유사한 입장을 취하면 일본이 추가적인 조치를 가할 명분을 만드는 꼴”이라며 “우선적으로 양국이 물밑 접촉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