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노영민 비서실장 취임 일성도 “비서는 입이 없다”였다. 노 실장은 직원들에게 “사무실마다 벽에 걸린 ‘춘풍추상(春風秋霜)’ 문구를 다시한 번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경청하고 조용히 성과를 내는 ‘비서의 자세’를 주문한 것이다. SNS 활동 자제도 당부했다고 한다.
26일 청와대를 떠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입은 달랐다. 소통 차원을 넘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가 10여 일 동안 일본의 경제보복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만 43개였다.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보다 많은 횟수는 물론 용어와 내용, 형식 모두가 파격 그 자체였다.
그는 13일 동학농민운동 때의 ‘죽창가’를 거론하며 첫 포문을 열었다. 18일엔 “중요한 것은 애국이냐 이적이냐”고 했고, 20일엔 “(일본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 비난, 매도하는 사람은 마땅히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1일엔 “문재인 정부는 국익수호를 위해 ‘서희’ 역할과 ‘이순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도 했다. 서희는 외교담판으로 거란군을 물리친 고려의 문관이고 이순신은 무능한 정부서 고초를 겪고도 온몸을 던져 나라를 구한 장수다. 문재인 정부를 ‘서희+이순신’에 비유한 것을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하지 말라’ 얘기할 수는 없다”고 옹호했다. 법조인으로 법리문제를 개인의 소통공간에서 밝히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는 논지다. 조 전 수석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리는 고위직 공무원이다.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이다. 이미 차기 법무장관도 예약한 상태다.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그의 말이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이 아니라는 해명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인엔 사견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의 ‘페북 정치’는 여러모로 비정상적이다. 그는 청와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홍보수석도, 대변인도 아니었다. 인사검증과 공직 감찰, 친인척 관리가 주요 업무인 민정수석이었다. 그가 검찰개혁과 관련한 글들을 올린 것은 업무 연관성이 있으니 그렇다 치자. 적어도 대일 외교문제는 그의 업무가 아니다. 청와대에는 엄연히 경제와 외교 안보를 책임지는 부서가 있다. 그는 법학자로 법리에 밝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직접 나서기보다는 해당 부서에 법리를 알려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게 맞다. 그게 일반적인 조직의 정상 프로세스다.
그가 사용한 용어와 접근법도 공직자로선 도를 넘었다. 죽창, 친일파, 이적, 쫄지 말자 등의 표현은 공직자의 절제된 언어가 아니다. 한결같이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적인 용어다. 군소야당 대변인으로 착각할 정도다. 논리도 시종 ‘애국 대 친일’로 편을 가르는 이분법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이적 또는 친일파라는 ‘이상한 프레임’이다. 과격한 정치인이나 선동가가 쓰는 수법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적어도 차기 법무장관 후보자가 사용할 화법은 아니다.
그가 굳이 나설 상황도 아니었다. 이미 국민의 반일 감정이 하늘을 찌르는 터였다. 전국적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됐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분명한 메시지를 낸 상태였다. 그가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이유가 분명치 않다. 일각서 그가 국민의 반일 감정에 편승해 ‘자기 정치’를 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정을 책임지는 최후 보루다. 링 위의 복서가 아니다. 코디네이터로 싸움을 말리고 위기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설 수 있지만 꼭 필요할 때만이다. 어차피 청와대는 위기를 풀어야 하는 주체다. 그만큼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더욱이 외교는 국민 감정으로 풀 수 없는 문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강한 목소리를 내고 정부는 이를 지렛대 삼아 외교 해법을 찾는 게 맞다. 그의 ‘페북 정치’를 보면서 공직자의 처신과 애국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