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조오현 스님과 한 줌의 재

입력 2018-06-0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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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6일 오후 5시쯤 스님은 입적하셨다. 언젠가 그분도 가려니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가실 줄은 몰랐다. 그분은 늘 공부를 시키시는데 이번엔 죽음으로 “시간은 무례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가셨다.

내 삶이란 것이, 내 생각이란 것이 그렇다. 좀 더 문전(門前)을 찾았어야 하는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미천하고 부족한 생각이 이번에도 빗나가고 어리석음만 남았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라도 만나는 법이다. 2001년 나는 강남 수서로 이사를 왔다. 2000년, 오래 투병해온 남편이 떠나고 마음까지 흐릿한 상태에서 담당 의사는 강을 버리고 산쪽으로 이사를 하라고 권했다. 강변은 더 우울하다는 것이다. 그때 수서역 주변에는 포장마차가 많았는데 가끔 포장마차에서 홀로 우울을 견디며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시 ‘저 거리의 암자’는 그래서 썼고 그래서 발표했는데, 스님은 그 시를 보았던 것이다.

동안거(冬安居)를 끝낸 선승(禪僧) 300명 앞에서 “여러분이 한 3개월간의 수행보다 이 한 편의 시가 더 불경에 가깝다”고 해서 날 놀라게 했고, 그때 문학적 좌절에 시달리던 내 마음에 힘을 실어 주셨다. 나는 다시 문학 속으로 들어갈 자신감을 얻었고 더 좀 잘해 보자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스님은 내게 ‘남암(南庵)’이라는 호(號)를 내리셨다. 남암 토굴에서 수행하는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達磨)를 찾아간 혜가(慧可) 스님은 “부처가 무엇이냐? 도(道)가 무엇이냐?”고 퍼붓는 질문에 “없다”라는 말만 듣자 돌아가지 않았다. 하룻밤이 지나고 눈 퍼붓는 토굴 앞에 서 있는 혜가에게 “달마가 저 내리는 눈을 붉은 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답을 주겠다”고 했을 때 제 오른팔을 잘라 붉은 눈으로 만들어 남암에 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달마 다음의 선종 2대가 된 것이다. 천강홍설(天降紅雪) 입설단비(立雪斷臂)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남암을 내 어리석은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을 나는 사양해 단 한 번도 남에게 알린 적이 없다. 이제 한 줌 재로 남은 스승 앞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리는 봄비를 붉은 눈물로 흐르게 할 수도, 진리를 깨닫기 위해 토굴 앞에서 밤을 지새울 수도 없거니와 한 끼라도 먹지 못하면 눈이 흐려지는 평범한 노인일 뿐이니 그 어렵고 무거운 작호(綽號)를 모셔만 둘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정신을 내가 지닌 문학에나마 한 자락 의미를 두어야 하는데 내 생의 남은 시간을 그 엄청난 진리에 이마를 부딪쳐 볼 일인가. 자탄과 자책이 절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 활활 불꽃이 타오르는 스님의 다비식을 바라보며 허무에 뼈가 녹아나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불꽃은 점점 줄어들었고 드디어 불씨만 남았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한 줌 재가 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 생이 그러하다.

스님도 알고 계셨다. 그러기에 ‘한 줌 재’라는 시를 쓰신 게 아닌가. “어제 그저께 영축산 다비장에서/오랜 도반을 한 줌 재로 흩뿌리고/ 누군가 훌쩍거리는 그 울음도 날려 보냈다// (중략)언젠가 나 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 건가/ 어느 숲 눈먼 뻐꾸기 슬픔이라도 자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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