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비하면 성추행에 대한 고은 시인의 침묵과 부인은 납득하기 어렵다. 시인 최영미가 ‘괴물’의 행태를 고발한 지 한 달 넘게 침묵하던 고 씨는 영국의 출판사와 외신을 통해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며 집필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과하고 용서받을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최영미의 말) 상황이다. 무슨 글을 어디에 쓰겠다는 것일까.
미당 서정주를 가리켜 하나의 정부(政府)라고 했던 고은은 그 자신도 하나의 정부, 아니 왕국이 되어 그 왕국 안에서 제지되지 않는 일탈과 방종을 일삼았다. 그의 萬行(만행)은 蠻行(만행)이었고, 시 낭독은 문학과 감성이 아니라 교조(敎祖)의 웅변이 된 지 오래다.
고은은 정말 대단한 시인이며 글꾼이다. 틀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처럼 그는 글을 만들고 시를 썼다. 올해로 데뷔 60년, 15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하고 호한(浩瀚)한 저작은 하늘이 내린 재주를 입증한다.
그러나 그는 “다산성(多産性)에 비해 특출한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없으며 ‘작의(作意)의 노출’이 심하고 시적 상상력이 협소한 태작(태作)이 상당수 보인다(시인 이시영의 평).” 교과서에 실려 삭제 시비에 휩싸인 그의 ‘눈길’도 그런 작품으로 보인다.
‘고은의 예술을 지지하는 80여 명의 발기인에 의해 설립된 고은재단’(고은 본인의 표현) 자료에는 정밀 세밀 치밀 조밀하기 이를 데 없어 그저 놀라운 해적이(연보)가 나열돼 있다. 가령 1975년 1년 동안 소주 1000병을 마셨다(소설가 이문구의 계산), 만 3일을 자지 않고 마시기도 했고 술 취해 공동묘지에서 잔 일도 허다하다, ‘현존하는 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등등. 그의 예술을 지지한다는 말도 우습지만, 이렇게 자신을 잘 기록하고 관리해온 사람이 어떻게 이런 노추 괴물이 된 것일까.
10여 년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관계자가 방한했을 때 한국 문인들은 후보자 선정을 위해 사전조사를 하러 온 걸로 굳게 믿고 칙사 대접을 했다. 그때 고 씨는 소설가 A 씨에게 “이번엔 자네가 양보하게”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노벨문학상 후보자(또는 수상자)가 되는 것 같으니 다음 순서를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착각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만 노벨상을 향한 그와, 한국 문인들의 집착을 잘 알게 해준다.
글은 곧 그 사람인가. 독자들과 대중은 그렇기를 기대한다. 아름다운 시를 쓴 사람은 아름답기를 바란다. 하지만 내가 잘 아는 시인은 절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했다. 그러니 일상적 자아와 문학적 자아의 괴리는 일정한 조화만 이룰 수 있다면 오히려 예술적 성취에 긍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글은 끝내 바로 그 사람이다. 고은도 이미 시를 통해 진술했다.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쌓이는 눈더미 앞에/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눈길’의 마지막 부분) 그의 마음, 아니 삶은 왜 어둠이 된 것일까. “노를 젓다가/노를 놓쳐버렸다.//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순간의 꽃’ 중에서)
이미 노를 놓쳐버린 그는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보게 된 것일까. 표절을 인정하지 않던 소설가 신경숙처럼 끝내 잠적하지 말고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자청하기 바란다. 60년 시업(詩業)이 아쉽고 아깝지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