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인문이 빠진 평창올림픽

입력 2018-02-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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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닷새 후면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다. 개회식의 기억이 생생해 25일의 폐회식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30년 만에 다시 개최한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한국인들은 열과 성을 다했고, 숱한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고 이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와 차례가 있고, 원인(原因)이 있어야 결과가 생긴다. 오륜(五輪)이라는 숫자로 상징되는 올림픽은 ‘5’에 의해 전개되고 운영되는 인류의 축제다. 그 5는 3과 4를 거쳐야 형성되며 작동된다.

삼원색, 삼세판, 가위바위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삼강(三綱)의 3과 춘하추동, 생로병사, 기승전결, 길흉화복(吉凶禍福)으로 상징되는 4의 세계를 거쳐 금목수화토 오행(五行)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 부자유친(父子有親) 등 다섯 가지 도리를 일컫는 오륜(五倫), 청황적백흑 오방색(五方色)의 행동체계와 질서가 펼쳐진다. 3에 의해 창조되고 결정된 세계는 4가 만들어준 변화의 원리로 발전하고, 5를 통해 구체적으로 성장과 발전이 실현되고 전개된다.

평창올림픽이 오각형 스타디움의 원형 무대에 오방색과 다섯 아이를 내세운 것은 우리의 사상체계와 정신세계를 잘 드러내준 훌륭한 선택이었다. 푸리 누리 아라 해나래 비채, 이 3남 2녀 다섯 소년은 평화를 찾는 여행에 나서 갖은 모험 끝에 ‘모두를 위한 미래’로 떠난다. 푸리는 의사가 되고, 누리는 인공지능 로봇을 제작하며, 아라는 홀로그램 속의 팝스타가 되고, 해나래는 디지털 도시를 시뮬레이션하는 사람, 비채는 스마트 기술로 한글을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 ‘ICT(정보통신기술)강국’ 코리아의 강점을 살려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강조한 내용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다섯 아이 중 인문계는 하나도 없었다. 개회식이 끝난 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정서가 더 커지고 있다. ‘문송’은 취업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내뱉는 자조적인 말이다.

왜 다섯 아이 중 한두 명이라도 인문학자나 작가,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인간 자체와 인간의 근원문제를 탐구하는 인문학은 과학기술을 인간화하는 학문이다. 세상과 사물에 대한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접근은 인간을 깨어 있게 하고 병들지 않게 한다. 의사라도 어떤 의사인가, 로봇 제작자라면 어떤 생각으로 일하는가, 팝스타에게는 어떤 가사(歌詞)가 중요한가, 이런 것들이 초점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 아니 강원도로 좁혀 말하더라도 세계에 내세울 인문전통은 풍부하다. 강릉이 자랑하는 이율곡과 신사임당의 학문·예술, 그들 모자(母子)로 상징할 수 있는 효(孝)의 전통을 부각시킬 수도 있고, 송강 정철의 가사 ‘관동별곡’을 활용할 수도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학자들은 국제인문포럼을 열었고, 한·중·일 3개국 서예가들의 국제서예전과, 13개 동계올림픽 개최국(개최 예정국 포함)의 시, 소설 작품을 소개하는 ‘겨울 문학 여행’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올림픽에서는 인문을 찾기 어렵다.

폐회식에서는 인문의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을까? 다섯 아이는 폐회식에도 등장한다. 개회식 아이들이 전국에서 선발된 것과 달리 폐회식의 다섯 아이는 모두 강원도에 사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의미상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의 인문전통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 올해처럼 올림픽과 월드컵이 열리고 지방선거까지 실시되는 해에는 여건이 더 좋지 않다. 성인 중 40%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역대 최저 독서율 통계가 최근 발표됐지만, 올해는 더 심한 ‘책 안 읽는 해’가 될 것이다. ‘하나 된 열정’으로 평화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올림픽이 전 세계적으로 위축되고 소외되는 인문학의 진흥에 기여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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