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잊혀선 안 될 의사와 열사

입력 2018-01-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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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아, 잘 가그레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차갑게 얼어붙은 강물에 뛰어들어 재가 된 아들을 한 줌 한 줌 뿌리며 통곡하는 아버지의 설움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탄식과 눈물이 넘쳐났다.

 영화 ‘1987’을 봤다. 쉰 살 언저리 동년배로 보이는 이들이 상영관의 많은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친구의 조언대로 손수건을 챙긴 건 참 다행이었다. 펑펑 울진 않았지만 슬픔, 분노, 감동이 교차하며 끊임없이 눈물샘이 열렸다.

 고(故) 박종철 열사로 시작해 고 이한열 열사로 끝나는 영화 ‘1987’은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가슴 뜨거웠던 당시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2시간여가 흐른 후 끝맺음 자막이 올라가고 화면이 꺼질 때까지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해 6월 광장을 메운 시민들의 뜨거운 함성과, 상영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이 그들의 발목을, 나의 발목을 잡았으리라.

 영화관을 나와 한참을 걸어 해장국집에 들어갔는데도 쉽사리 2018년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윤상원, 전태일, 강경대, 김귀정 등 국가 권력의 야만적인 폭력 앞에 무참히 스러져간 청춘 열사들이 불쑥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한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열사가 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갔던 이준·이상설·이위종 열사, 박열 열사, 유관순 열사, 김마리아 열사 등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고귀한 분들이다. 열사(烈士)는 나라를 위해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이다.

 의사(義士)는 열사와 어떻게 구분할까? 국어사전은 ‘의사’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의로운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것만으로는 열사와 의사를 확연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런데 의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열사와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상옥, 박차정(조선혁명간부학교 설립자 겸 제1기 교관), 남자현(독립군의 어머니, 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 모두 총이나 포탄 등 무력으로 일제에 항거한 공통점이 있다.

 열사와 의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지만, 투쟁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무력 사용’ 여부에 달린 것이다. 맨몸으로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분들은 ‘열사’, 총이나 포탄 등 무력으로 항거하다 의롭게 숨진 분들은 ‘의사’이다.

 그렇다면 지사(志士)는 열사·의사와 다를까? 지사 역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사람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의사·열사는 순국한 뒤 붙일 수 있는 이름이지만 지사는 생전에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차이도 궁금하다. 독립운동가 중 살아서 광복을 맞은 분은 ‘애국지사’이고, 그 전에 사망한 분은 ‘순국선열’이다. 따라서 김구·박열· 김원봉 등은 애국지사, 김좌진·안중근·윤봉길 등은 순국선열이라 부를 수 있다.

 영화 ‘1987’을 본 후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묘소를 참배하는 청소년이 많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면서 희망한다. 영화가 우리 역사 속 열사, 의사들을 더 많이 소환하여 조명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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