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이 만난 사람]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北 反인도적 범죄 김정은 제재, ICC서 다룰 수 있어야”

입력 2017-04-10 13:51 수정 2017-04-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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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러 등 상임이사국 거부 가능성 커…새 대통령 안보·외교 일관된 방향 정해야

▲송상현 회장의 삶의 바탕색은 평화와 희망의 푸른색인 것 같다. 해상법 전문가로 푸른 바다에 눈을 떴고, 국제형사재판소장으로 평화를 지향해온 그는 지금 푸른색이 상징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넥타이도 푸른색이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송상현 회장의 삶의 바탕색은 평화와 희망의 푸른색인 것 같다. 해상법 전문가로 푸른 바다에 눈을 떴고, 국제형사재판소장으로 평화를 지향해온 그는 지금 푸른색이 상징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넥타이도 푸른색이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북한 김정은의 도발이 끝이 없다. 미중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5일에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올해 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 도발을 했다. 유엔 안보리가 7건의 대북 제재 결의를 통해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김정은은 대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게다가 지난 2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하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이 같은 도발과 범죄, 북한 주민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김정은을 제재해야 한다는 국제여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과 소장을 역임한 송상현(宋相現·76)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을 만나 그 방법을 물었다. 현재의 한국 상황에 대한 원로 법조인의 생각도 알아봤다. 인터뷰는 6일 오후 서울 마포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건물 회장실에서 이루어졌다.

△국제 형사재판을 통한 김정은 처벌 논의의 법적 근거가 궁금합니다.

“사람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재판 없이 가두어 죽어서야 나올 수 있게 하고, 고모부인 장성택 처형처럼 절차도 갖추지 않고 죽이고 고문하고, 이렇게 인권위반 사태를 계속적으로 자행하는 게 국제법적 시각에서 반인도적 범죄라고 보는 거지요. 게다가 이번엔 이복형까지 살해하지 않았어요?”

2002년에 창설된 ICC는 유엔과는 독립된 기관으로 대량 학살,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재판소다.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김정은을 ICC에 세워 처벌하는 것은 규정상 불가능합니다. ICC의 설립조약인 로마조약(2002년)은 회원국에만 효력이 미치는데, 북한은 회원국이 아니거든요. 그러나 유엔 안보리가 ‘북한 전체를 ICC에 회부할 테니 수사와 재판을 해 달라’고 결의하면 가능합니다. 리비아와 수단의 경우처럼 회원국이 아닌데도 안보리의 특별 결의에 따라 ICC가 수사·재판 중인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실비아 페르난데스 데 구르멘디(63) ICC 소장도 규정상 어려운 점을 설명하면서, 김정남 살해범죄의 당사국인 말레이시아가 뒤늦게 로마조약 가입국으로 합류하더라도 별도의 선언이 있어야만 가입 이전의 사건을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안보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회부하더라도 소급 적용이 어렵다고 했다.

△우리가 안보리 결의를 이끌어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안보리 결의를 얻으려면 15개국 중 3분의 2이상이 찬성하고, 상임이사국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 됩니다. 북한의 ICC 회부는 회원국이 거의 다 찬성하지만 중국이 거부할 확률이 높고 러시아도 중국보다는 덜하지만 거부할 걸로 보이는 게 법률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ICC에 회부하는 것은 법률적 장애요인이 있으니 그 대신 북한 인권위반 사태를 다루기 위한 특별 국제법정을 운영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옛 유고슬라비아 전범 처벌을 위한 형사법원이나 르완다 100만 명 학살범 처리를 위한 재판소, ‘킬링 필드’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 학살사태를 다루는 특별 법정이 실제로 운영된 바 있습니다.”

△특별법정 운영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ICC든 특별 법정이든 기관 간 경쟁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 인권사태를 다루는 특별법정을 만들려면 유엔이 나서줘야 하는데, 아마도 운영비용은 대한민국에 다 내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캄보디아의 경우만 보더라도 예상보다 훨씬 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기간도 최소한 5년 이상 걸릴 겁니다. 이 문제에 가장 관심이 큰 건 미국입니다. 새로 법정을 만드는 건 오케이이지만, 누가 주도적으로 돈을 댈 거냐가 초점입니다. 돈 내라고 하면 다들 몸을 빼는데 우리 국민과 정부는 대체로 이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송 회장은 이어 최근의 새로운 논의를 소개했다.

“국제법 학자들은 요즘 보편적 형사재판 관할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중대 범죄 네 가지, 즉 전쟁, 침략, 집단학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어느 나라 법원이건 로마조약과 관계없이 보편적 형사재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게 허용하자는 거지요. 김정은이 열차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갔다면 그 나라의 지방법원이 체포해 형사재판을 하게 한다는 겁니다.”

당연히 주권침해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체포와 강제 이주를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은 전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숨어 있다가 이스라엘로 압송돼 사형당했다. 그는 이스라엘 법원에 대해 “무슨 권한으로 나를 재판하느냐”고 항의했으나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등 흉악범죄는 어느 나라 법원이든 보편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처벌했다. 그 재판과정은 독일 태생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잘 다루었다. 하지만 보편적 형사재판 관할권은 아직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인 이론은 아니다.

송 회장은 2015년에 발족한 ‘북한 인권 현인(賢人) 회의’의 8인 구성원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매년 3월 제네바의 유엔 인권이사회와 10월의 유엔 총회가 열리면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홍보 인터뷰 등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 세계가 망각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다. 이런 국제 여론몰이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이 내키지 않더라도 앞장서서 거부권 행사를 하지 못하게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 회장은 ICC 창설 이듬해인 2003년 초대 재판관으로 취임, 2009년 제2대 재판장으로 선임된 뒤 한 차례 연임을 거쳐 2015년 3월에 퇴임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국제 사법기구의 수장이 됐지만, 당시 정부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와 달리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 주문하고 싶은 게 많겠네요.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새 대통령을 빨리 뽑게 됐는데, 안보가 굉장히 어렵고 묘한 상황이니 대통령이 국민을 한데 묶고 일관된 방향을 정해서 나가기를 바랍니다. 사람마다 관심과 전공분야에 따라 주문사항이 다르겠지만, 나는 안보 외교 쪽이 너무 심각하고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권문제가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야권을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북한 인권 현인 회의’와 같은 활동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법조인들이 최근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데,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법조인들이 직업적 자존감이 높아 역경을 잘 견뎌왔는데 요즘 같은 부패 행태는 정말 창피합니다. DNA수사는 한국이 최고이고 법관 훈련, 윤리규정 훈련 같은 건 제도적으로 잘돼 있습니다만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요. 로스쿨이나 연수원에서 법조인의 건전성 독립성을 인식하게 하는 협동 교육프로그램을 짜서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고전적 덕목을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일상의 구체적 사례 문답을 통해 윤리가 몸에 배게 해야 합니다. 특히 연수원의 교육과목이 너무 많고, 어떤 것은 가르칠 만한 전문가가 없는데도 과목을 개설했어요. 다 허영이나 욕심입니다. 해외연수 제도도 겉도는 점이 있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윤리적 각성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으나 국제형사재판과 연결하기가 다소 어렵고, 글의 초점도 맞지 않을 것 같아 그 부분에 관한 문답 소개는 유보하기로 했다.

공동취재 박은비 기자 silverline@

송상현 회장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현 회장

1941년생인 송상현 회장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에서 정치인,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암살된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1890~1945) 선생의 손자다. 세 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다. 아호 심당(心堂)은 제자인 김문환(金文煥) 전 국민대 총장이 탄허(呑虛) 스님 등에 자문해 지어주었다고 한다. 송 회장의 아내는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김상협(金相浹·1920~1995) 전 국무총리의 장녀 김명신(金明信) 여사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 졸 △미 코넬대 법학박사 △14회 고등고시 행정과(1962), 16회 고등고시 사법과(1963) 합격 △1972~2007.02 서울대 법대 교수(현재 명예교수), 1989년 이래 미 플로리다대, 하버드대, 콜럼비아대 등 교수 △대학골프연맹 회장(1992) △2003~2015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및 소장 △2012~현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 △2015~현재 국가인권위 정책자문위원장, 사법연수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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