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스무살 나이에 단돈 83엔을 손에 쥐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배달로 고학하던 청년은 2차 대전의 소용돌이에서 비누공장으로 사업을 시작해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껌 사업으로 1948년 일본 롯데를 만들며 성공한다.
그리고 그 청년은 일본 성공을 바탕으로 조국인 대한민국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한다. 바로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다.
5만 엔으로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했던 신격호 회장은 일본의 성공에 이어 1967년 롯데제과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화한 한국 사업의 대성공을 거뒀다. 롯데그룹은 창립 50주년인 올해 자산 규모 105조 원의 재계 5위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든 원동력은 신격호 회장의 물러서지 않는 추진력과 뛰어난 마케팅 감각이었다.
롯데제과에 이어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1973년 변변한 국제 수준의 호텔이 없었던 동양최대 초특급 호텔을 건설하려 할 때 임원과 주위에서 위험 부담이 크고 사업 전망이 어둡다는 이유로 격렬한 반대를 했지만, 신 총괄회장은 “부존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관광입국으로 성공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000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6년여 기간에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가 투자됐지만 롯데호텔은 롯데그룹의 도약대가 됐다.
신 총괄회장은 또한 1970년대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 욕구와 구매 패턴이 다양해졌지만, 유통업을 대표하는 백화점의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흡한 점을 간파해 1979년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를 완공해 유통업의 선두주자로의 기반을 다졌다.
이 밖에 호남석유화학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해 롯데그룹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했다. 그리고 신 총괄회장의 추진력의 결정판인 대한민국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의 완공을 이뤘다.
재계서열 5위 롯데그룹 50년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무서운 추진력과 뛰어난 마케팅력의 여정이었다. 신 총괄회장이 경영 일선에 물러나면서 ‘100년 기업을 향한 롯데그룹의 성장’은 신동빈 회장의 몫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