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환기의 반(反)국가 증후군

입력 2007-11-1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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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과도기를 맞아 정계를 비롯 관계.재계를 망라하는 큰 사건들이 우리 국가사회 지도층 전반을 소용돌이 치게 하고 있다. 현역 국세청장의 전례가 없는 구속사태가 벌어지고, 국내 최대 최고를 자랑하는 재벌그룹의 비자금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돌출, 그 어느때 보다도 치열하게 얽혀들고 있다. 여기에는 '책임소재'와 그 해법을 놓고 국가운영을 책임져야 할 정치권 각 정파들간의 이해까지 뒤엉켜 어디까지 갈지 모를 정도로 진통이 심한 양상이다. 이런 상황은 한마디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겠다고하는 우리의 사회기강이 아직도 그만큼 느슨하고 취약한 구조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현역 국세청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은 지난 66년 국세청이 당시 재무부에서 외청으로 독립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세청이 개청 이래 최대의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일을 조직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이에 합당은 대책을 강구해야만 `불행한 기록'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란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더욱이 국세청은 국정원, 검찰 및 경찰청과 함께 4대 권력 기관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상징하는 의미도 간단치가 않다. 최고 권부(權府)의 기관장이 이러니 그 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들의 기강이 어떠하겠느냐는 일반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도 무시만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자칫 만의 하나 부하직원들에도 이런 '뇌물관행'이 자리하기 시작했다면 국가 존립과도 직결될 수 있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상징성이 그만큼 큰 사건이다.

더욱이 영장을 통해 본, 구속된 전군표 청장의 수뢰혐의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업무추진비 명목이라 하더라도 국세청에 상납관행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번 일로 국세청은 아직도 과거의 나쁜 관행을 버리지 못한 조직으로 자리매김되는 형국이 됐고, 이번 사건이 개청 이후 최초의 치욕을 딛고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도 그래서 곳곳에서 상대적으로 강하다.

후임청장으로 내정된 한상률 내정자로서는 당연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고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우선 전임 국세청장의 구속으로 타격을 받은 조직을 안정시키고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눈앞에 닥친 종합부동산세 징수, 세제 문제, 조직화합 등 처리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국세청 개혁안의 마련으로 신뢰를 치유하는 일부터 서두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대통령선거와 정권교체를 앞둔 과도기라고 조직 추스르기와 개혁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간 오히려 세제행정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에 놓이고 말았다.

또 하나, 삼성그룹이 전례가 없을 정도의 대규모 비자금 조성과 전방위 로비 의혹에 휩싸인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사태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김 변호사는 지난주에 이어 또다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에서 불법 로비는 모든 임원의 기본 책무"라고 주장하고 자신은 법조계를 담당했다고 밝혔다. 그가 폭로한 삼성그룹의 불법과 비리는 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가온다. 임원 1천여 명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한 수조 원대의 비자금 조성,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불법 재산 형성과 경영권 편법 상속, 검사와 판사나 재정경제부와 국세청 관리 등에 대한 전방위 로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사건의 증인 조작과 재판부 매수 시도 등 하나같이 믿기 어려운 메가톤급들로 구성돼 있다.

물론 삼성도 제기된 의혹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자세다. 우선 차명계좌를 이용해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폭로에 대해 국제 수준의 회계 기준을 준수하고 있는데 분식회계라니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 최대 재벌과 특수부 검사를 거쳐 이 재벌에서 전무급 고위직을 지낸 현직 변호사가 진실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삼성으로서는 총수 일가와 그룹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칫하면 형사적 책임과 함께 기업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김 변호사의 주장을 뒤엎기 위해 총력을 다해 맞설 게 뻔하다.

진상규명의 진퇴양난(進退兩難)

결국 진상 규명은 검찰의 몫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또한 사건의 성격상 과연 제대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지, 국민적 의구심은 매우 높은 상태다. 정치권은 현 검찰로는 제대로 진상을 밝히기가 어렵기 때문에 '특검법'으로 해야 한다고 들고 나섰다. 그렇지만 정치권 스스로도 이미 대선을 앞두고 각 정파들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얽혀들고 있어 역시 전망은 어둡다. 대통합민주신당 등 3당이 발의한 ‘삼성 비자금•뇌물공여•불법상속 의혹’ 특검법안도, 또 한나라당이 삼성 비자금 의혹에 더해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까지 규명해야 한다며 제출한 별도 특검법안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이기는 커녕 정략의 소산일 뿐이라는 지적들이 팽배한 상황인 것이다. 어느 법안을 택일하든, 담합을 거쳐 단일법안으로 병합하든 그 결과로서의 제6호 특검법, 제7호 특검은 역대 최악으로 빗나갈 가능성까지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특검법'은 제출단계에서 부터 대선정략의 와류(渦流)에 휩싸여 들고 있는 셈이다.

공정한 수사를 할 수만 있다면야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하는 게 효율적일 뿐 아니라 정도(正道)란 점에서 특검보다 낫다. 치부를 스스로 파헤쳐 드러내는 게 검찰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이미 검찰로서도 별도의 ‘삼성 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꾸리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렇지만, 이 또한 여러 한계를 보여준다. 이번 사건이 검찰조직 핵심 고위층까지 '삼성로비 주대상' 혐의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그 휘하의 검찰조직이 특별수사본부 구성 하나로 정치권의 특별검사 도입 움직임을 멈추게 하기는 논리적으로도 어렵게 돼있다. 그 만큼 사태가 진퇴양난(進退兩難)인 형국이다.

이번 사태들은 민주 선진국으로의 재도약 발판을 제대로 놓느냐, 아니면 이 상태에서 다시 주저앉느냐는 대한민국의 또다른 큰 시대적 전환점에서 촉발, 사회 일부 실세권(實勢圈) 내부의 온갖 역학이 맞물려 들어오고 있는 현상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라의 미래와 국가정의 및 기강확립의 차원에서 정치권의 전례없는 국익적(國益的) 각오가 요구되는 성격을 띠고 있다.

기본적으로 민주 정당은 국고보조금, 즉 국민의 혈세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현 정치권도 중대한 국가적 과도기에서 이런 일들이 악화되어 나가도록 하는 환경을 만드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밖에 없다. 대선정국을 맞아 부쩍 잇따르고 있는 탈당•합당•창당의 반복은 무엇인가. 결국 국민의 둥지에 제멋대로 알을 낳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에 안든다고 그 둥지를 부수는 형상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들은 재계와 관계가 또한 거꾸로 정치권의 그런 당리당략과 정파적 정치행보의 '악습'들을 부추기는 자양분을 공급하고, 정치권은 이런 국가기강의 이완에 '직무유기' 또는 '일조' 해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론을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제 오는 12•19 대선일을 기점으로 이번 만은 이런 지긋지긋한 나라운영 구조상의 '반(反) 국가 증후군' 상태를 반드시 벗어나도록 해야한다. 걸핏하면 온갖 추문에 휩싸여온 우리 지도층 세계, 이제는 정말 끝장을 봐야한다. 가뜩이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현실속에서 그 단호한 '선택'들이 진정으로 국가의 장래를 위하고, 또 ‘선진 정치’를 열어가는 길도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의 선진화는 누가 그저 가져다 주지 않는다. 오직 이 시대, 우리 국민 모두의 각오와 헌신, 그리고 올바른 '시대정신'의 열정으로 짊어져야만 할 몫일 것이다.

이타임즈 이병도 주간 [bdlee@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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