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입력 2016-12-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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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어린 시절 나는 대관령 아래 아주 깊은 산촌에서 자라 중학생이 될 때까지 교회를 보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같은 건 더더욱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날은 그냥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하루였다. 크리스마스 때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가고,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것도 책에서만 보고 자랐다.

중·고등학교 때에도 특별했던 것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방학을 했고, 매일 얼굴을 보는 가까운 친구들끼리 방학 전에 우리 손으로 조잡하게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을 교실에서 서로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대학을 다니던 때도 일 년 중에 그날 하루만 통금이 풀려 그저 밤늦게까지 거리를 쏘다닌 게 전부였다.

내가 내 손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본 것은 군대에 가서였다. 군대에 대하여 흔히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대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하는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 있는 전방 부대였다. 입대해 처음 맞은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서른 명 남짓 기거하는 내무반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장식하기 시작했다.

땅으로 늘어져서 잘라 주어야 하는 소나무 가지를 베어 와 옆으로 누운 모양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반짝반짝 점멸하는 색전등을 두르고, 나무에 눈이 내린 것처럼 의무대에서 얻어 온 약솜을 얹자 내가 이제까지 봐 온 어떤 것보다 더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었다. 전우들은 저마다 집에서 오고 또 친구와 애인이 보내 온 크리스마스 카드를 실에 꿰어 트리에 매달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이 그해 크리스마스 새벽의 일이다. 마침 그날 새벽, 내가 불침번을 서고 있을 때였는데, 창밖엔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밤중처럼 깜깜한 새벽이었는데 밖에서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주고받는 말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아니 누가 이 산중의 부대에까지 찾아온 거지? 하고 출입문 쪽으로 나가 내다보려고 하는데 바로 문 밖에서 아이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누가 미리 일러주지 않아서 몰랐는데 부대 바깥 교회에 다니는 동네 어린이들이 조를 짜서 어른 인솔자를 따라 동네 부근에 있는 부대의 내무반마다 찾아다니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주는 것이라고 했다.

노래가 끝나길 기다려 문을 열자 아이들이 한꺼번에 “아저씨,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 사람인데, 또 이제까지 크리스마스 때면 습관적으로 카드를 주고받고 밤새워 거리를 쏘다닐 줄만 알았지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누구에게도 나의 따뜻함을 나눠 준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의 인사에 눈물이 왈칵 나올 것만 같았다. 가슴 저 밑에서 치밀어오르는 감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매우 어색한 모습으로 겨우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를 했다.

밤이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 새벽에 군인인 우리가 보호해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해 창밖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날 새벽의 가슴 먹먹한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아,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곁으로 오셨구나. 그날 새벽 어린 천사들의 방문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지금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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