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바위도 나무에게 몸을 내주는데 …

입력 2016-10-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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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치열한 삶이다

아름다운 생이다

나는 지난 겨울 한 무리의 철거민들이

용산에 언 뿌리를 내리려다가

불에 타 죽는 걸 보았다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시집 『뿔을 적시며』에서

나무나 풀처럼 세상에는 작은 틈을 필요로 하거나 틈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살기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거나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생존을 위하여 틈을 요구하고 맞서기도 한다. 우리의 사회적 갈등이 대부분 그런 것들이다.

물대포에 맞은 농민 백남기 씨가 기어이 사망했다. 만인환시의 서울 한복판에서 그는 물대포를 맞고 그 충격으로 아스팔트 위에 인형처럼 쓰러졌다. 그것을 방송을 통해 국민이 다 보았는데 그의 사망을 확인한 의사는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병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방면의 지식이 전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볼 때도 그 진단은 교통사고로 충격을 받아 사망한 사람의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명석하기로 유명한 서울대학교 의사들이 미숙해서 그랬을까, 실수로 그랬을까.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그랬을까.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던 1980년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부터, 수장당하는 자식을 바라보기만 한 유족들을 죄인 취급하는 세월호 참사, 살인 가습기에 이르기까지 국민은 정부나 유력 기업을 믿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다. 공자는 나라를 유지하는 데 군대와 식량보다 신뢰를 우선했다.

공권력에는 사과나 눈물이 없다. 그래서 불에 타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물대포에 맞아 죽은 일이 벌어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누구든 떳떳하지 못하거나 감추는 일이 많을수록 진실과 대중의 이목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공권력은 이미 고통은 물론 영혼도 떠나간 농민 백남기 씨의 작은 몸을 열어 또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국가에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건 없다.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풀씨처럼 힘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숨 쉬고 살 틈은 주어야 한다.

좁은 문 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바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언젠가 바위에 균열을 낼까 봐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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