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9월 28일 강윤국-항일운동 대미 장식한 ‘부민관 폭파’ 주인공

입력 2016-09-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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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명 편집부 차장

“우리가 바라는 건 나라의 독립이다. 위험하다 해도 지금의 (일제 치하의) 상황보다 위험한가.”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등은 광복을 20여 일 앞둔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폭파 의거를 결행했다.

부민관 의거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립극장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자리)에서 친일 부역자이자 정치깡패인 박춘금 등의 주최로 일본 고위 관료들이 집결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리던 중 20대 애국 청년들이 사제폭탄을 터트린 사건이다. 박춘금이 일제를 위한 궤변을 토하는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장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 의거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한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서울시의회 부지에 의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서울에서 출생한 강윤국(1926.9.28~2009.10.3)은 일본에 있는 군수공장에서 훈련공으로 일하던 중 동포에 대한 치욕적 처우에 항거해 1000여 명의 직공과 함께 총파업을 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벌였다. 1945년 5월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해 친일파 박춘금을 명월관에서 폭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부민관 의거 이후 일본 경찰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5만 원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폭파에 성공한 대한애국청년당 단원들은 일본 경찰을 피해 활동했으며 강윤국은 경기 화성의 야학당을 본거지로 항일 거사를 모의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그는 2009년 개천절에 생을 마감했다.

한편 광복 후 일본으로 도피한 박춘금은 죽은 뒤 한국 땅에 들어왔다. 1973년 도쿄 게이오(慶應)대학 병원에서 숨을 거둔 그는 밀양에 있는 아버지 묘소 바로 밑에 묻혔다. 1992년 ‘한일문화협회’가 무덤 옆에 송덕비를 세우기도 했으나 10년 뒤 박춘금의 묘는 파묘되고 송덕비도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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