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8일, 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엄. 연단 위에 익숙한 사람이 서 있네요. 행사장엔 박수 소리가 가득하고요. 자세히 보니 올여름, 속초를 뜨겁게 달궜던 나이앤틱의 존 행키(John Hanke) 대표입니다. ‘포켓몬 고(Go) 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 그는 거기 왜 있는 걸까요? 그 곳은 애플의 ‘아이폰7’ 출시 현장인데 말입니다.
“포켓몬 고의 애플 워치용 앱을 내놓겠습니다.”
존 행키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팀 쿡(Tim Cook)이 올랐던 연단 위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마리오 아버지’로 불리는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 대표와 함께 애플의 비밀병기였던 겁니다.
“한국에선 애플워치2가 얼마나 인기가 있을지….”
‘애플 워치2’는 이번 행사에서 가장 먼저 소개될 정도로 팀 쿡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출시 18개월 만에 오메가ㆍ카르티에를 제치고 롤렉스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시계이니 자부심이 남다르겠죠. 그런데 웬일인지 한국 반응이 좀 시큰둥합니다. 속초에서 더 실감 나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애플 워치2’의 비밀병기가 한국선 별 효과가 없기 때문이죠. ‘포켓몬 고’는 구글 지도의 위치정보 시스템(GPS)을 기반으로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이 데이터가 없습니다. ‘애플 워치2’를 차고 게임을 즐기려면 여전히 속초에 가야 한다는 얘기죠.
지난달 말 이투데이에 실린 기사인데요. 자세히 살펴볼까요? 구글은 올해 6월 국토지리정보원에 ‘5000대1’로 축적한 국내 정밀 지도 데이터를 외국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에 저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한 마디로 지도 달란 얘기입니다. “8월 24일까지 말해줄게”라고 약속한 우리 정부는 끝내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좀 더 논의해보고 11월 23일에 결정할게”란 말만 되풀이했죠.
국가 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걱정입니다. 북한의 도발 속에서 군사기지가 노출되면 국민안전이 위협받으니까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산업 발전을 위해선 구글에 지도를 넘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뭣이 중한지, 저도 모르겠네요. ‘안보 vs 경제’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가치이니까요. 하지만 이 기사 타이틀이 ‘경제 톡’이니 만큼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도 데이터가 갖는 경제적 중요성 말입니다.
자율주행차 산업이 본격화되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지도 데이터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애플은 유럽 내 최대 내비게이션 제조업체인 톰톰과 손잡은 데 이어 최근 중국의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에 10억 달러(약 1조932억 원)를 투자했고요. 중국 바이두는 자체 지도를 바탕으로 지난해 말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을 끝냈습니다. 독일의 명차, 아우디ㆍBMWㆍ다임러는 노키아의 지도 서비스 ‘히어’를 인수했죠.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승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요. 현대차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안드로이드 ‘오토’를 탑재한 쏘나타를 선보였습니다. “가까운 피자 가게 알려줘” 등을 말하면 스스로 길을 안내(구글 맵 기반)하는 기능이죠.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이 차를 살 수 없습니다. 구글 맵에 우리나라 지도 데이터가 없거든요.
관광 업계에서도 정부가 대승적(?) 결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거든요. 빠른 길 서비스ㆍ맛집 추천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어도 지도 데이터가 없어 난감합니다.
“모든 길은 구글로 통한다.”
자율주행차ㆍ인공지능(AI)ㆍ로봇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키워드는 ‘데이터’입니다. 이 부분에선 구글이 단연 앞서 있죠. 한국은 아직 걸음마도 못 뗐습니다. 물론, 국가 안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가치입니다. 하지만 지도 데이터가 갖는 경제효과를 고려하면 무작정 논의를 미룰 수도 없습니다. ‘애플 워치2’를 차고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건 매력적이지만, 비밀병기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 좀 더 기다려봐야겠네요. 두 달 정도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