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심각해진 노인들의 자기 학대

입력 2016-06-2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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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1960~80년대 돈 버는 재미에 쏙 빠져 하루하루 살아갔던 70대 남성 A씨. 그는 은퇴한 요즘도 80년대 어느 날 음식 장사해서 ‘대박’쳤던 얘기를 입에 달고 산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잠을 자는 5~6시간을 빼고 모든 시간을 오롯이 고된 노동에 투입한 결과였다.

이렇게 개미처럼 모은 돈으로 남들 못지않게 풍요한 삶을 살면서 스스로 100점 인생을 자신했던 그에게 어느 날 대재앙이 닥친다. 아내가 훌쩍 저세상으로 가버린 것. 이것도 정신줄 ‘대방출’할 일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까지 병으로 몸져누워 버린다.

이후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상 술만 푼다. 이 오묘한 물건이 없으면 금세 죽을 것 같아서…. 하지만 그의 신체는 처절하게 변해간다. 가히 피부와 가죽이 서로 붙어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이 된 것이다. 그는 허구한 날 병원으로 실려 가나 그때마다 치료를 완강히 거부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

A씨처럼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학대하는 노인이 생각보다 많다. 보건복지부는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 하루 전인 14일 ‘2015 노인학대 현황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총 1만1905건. 2014년보다 12.6%(1만569→1만1905건)가 늘어났다.

그러나 학대 신고가 늘어난 것보다 가슴 저미게 하는 것은 바로 가해자 중에 ‘자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14.7%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아들(36.1%), 배우자(15.4%)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숫자다. 특히 딸(10.7%), 며느리(4.3%)는 이보다 더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자기 학대’는 A씨같이 몸이 피폐해져도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음식을 먹지 않거나 노상 술만 퍼마시며 자신을 방치하는 정신병 증상이다. 증상이 심해지면 죽을 수도 있다.

특히 자기 학대는 발견이 쉽지 않고 신고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실제 이 증상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보고서의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기 학대 증상은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를 누려온 노인이 더 많이 생긴다. 사회적 우등생의 경우 사고방식을 새로운 환경에 기민하게 맞추지 못해 퇴직하면 그 충격이 더 격렬한 것이다.

한국의 핵심 노인 문제로 떠오른 자기 학대를 줄이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일본에서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의 은퇴 후 생활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사람들은 매일 손자, 손녀 팬티를 손으로 직접 빤다. 남는 시간을 죽이기에도 유용하고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들은 하루가 멀다고 여행 간다. “그렇게 만날 여행 가려면 그 돈이 얼마인데 이런 한심한 소리 하느냐”는 독자들의 안티가 쏟아지겠지만 이들의 여행은 지하철 여행, 동네 여행 같은 지극히 소박한 것이다. 교육받거나 교육하는 것도 핵심 소일거리다. 뭔가를 배우고 뭔가를 가르치는 것은 무한한 지적 쾌락을 주기 때문에 이만큼 좋은 일거리는 없다.

이들은 집 청소나 리모델링에도 무진 애를 쓴다. 운동도 되고, 집도 반짝반짝 윤기가 나니 일거양득이다. 아울러 기업 신상품이 나왔을 때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제시하는 일도 자주 하는 일이다. ‘평범 속 비범’한 의견을 내 사회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국 베이비 붐 세대는 은퇴라는 걸 한 다음 무한대로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매일 해 뜰 때마다 패닉에 빠진다. 하지만 일본 단카이 세대처럼 하루를 보내면 지루할 틈이 절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바빠서 패닉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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