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내 서재에 있는 물레

입력 2016-06-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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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이나 그 집을 대표하는 오래된 물건이 있다. 보통 어머니가 쓰던 물건은 딸이 물려받고, 아버지가 쓰던 물건은 아들이 물려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안팎 간에 쓰던 물건과 애지중지하던 물건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상징적으로 물려받은 물건은 1966년에 발행된 ‘한국대표문학전집’이다. 한 권이 지금 책 세 권 두께만 한 그 열두 권짜리 문학전집은 내 서재 가장 아랫자리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다. 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형들이 읽고, 내가 자라며 읽은 책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어머니가 쓰던 물건이 있다. 지금 내 서재 한쪽에 아주 예전에 할머니가 쓰시고, 어머니가 쓰시던 물레가 놓여 있다. 나는 내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가 베를 짜고, 물레를 돌리고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길쌈을 하고 물레를 돌리고 베를 짜던 어머니의 모습은 중학교 때까지 보았던 것 같다. 그때로부터 불과 한 세대가 지났는데, 내 서재의 물레를 보고 저것은 무슨 물건이냐고 묻는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도 많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더욱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봄이 되면 할아버지는 어느 논 한 귀퉁이엔 왕골을 심으시고, 또 어느 밭 한 귀퉁이에 삼을 심으셨다. 요즘도 이따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논란이 되고 있는 대마초가 바로 삼잎이다. 그것이 밭에서 여름내 사람 키보다 더 웃자란다.

어느 가을날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가서 왕골을 잘라오고, 또 삼을 잘라온다. 왕골은 겨우내 할아버지가 그것으로 자리를 매고, 삼은 베를 짜기 전 할머니와 어머니의 소일거리가 된다. 삼을 잘라오면 잎들은 모두 잘라서 버리고 삼 줄기를 가마에 찐다. 그런 다음 껍질을 벗겨낸다. 그때까지도 삼 줄기는 거무칙칙한 색이다. 그 삼 껍질을 겨우내 집집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가늘게 실처럼 찢어 가닥가닥 이어 붙인다. 그것을 ‘삼을 삼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삼은 삼을 베를 짜기 전에 우선 커다란 실타래처럼 만드는데, 그때 그 실을 감는 것이 바로 물레다. 베를 짤 때 이 물레는 두 번 쓰인다. 처음 삼을 삼아 실로 만들었을 때와 그것을 다시 치자물을 들여 베를 짜기 전 또 한 번 실타래를 만들 때 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할머니 쓰라고 만들어주신 물건이다. 그걸 다시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다 베를 더 이상 짜지 않게 된 다음엔 오래도록 광 속에 넣어두었던 물건이다. 베틀과 또 베를 짤 때 소용되는 여러 가지 물건이 함께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어느 시기에 없어지고 이것만 남았다. 할아버지가 자리를 짤 때 쓰던 자리틀과 가마니틀도 비슷한 시기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것들도 지금 보관하고 있다면 불과 몇 십 년 전의 물건이지만 참으로 진귀한 물건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어머니가 딸도 아닌 아들인 내게 저 물레를 주신 뜻은 길쌈을 할 때 한 올 한 올 실이 헝클어지지 않게 저 물레에 감기듯 그렇게 술술 실을 뽑듯 글을 쓰라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무언의 격려이고 응원인 셈이다. 그러나 재주가 출중하지 못해 내 글은 실을 뽑듯 술술 나오지 못하고 늘 힘든 산고를 거친다.

저 물레는 이제 내 곁에 30년 가까이 있으면서 이제까지 내가 쓴 책을 모두 지켜본 셈이다. 어머니처럼 물레가 내 작품을 지켜보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 물레는 내 글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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