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김영란법 취지 살려야만 하는 이유

입력 2016-05-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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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부국장 겸 산업부장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사람, 사랑, 건강….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답이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돈을 좇지 않는 사람을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고, 부자가 건강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보다 평균 수명도 더 길다.

요즘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만든 법조비리 ‘정운호 게이트’만 해도 그렇다.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면서 번 돈 수백억원을 마카오 등지에서 도박에 흥청망청 쓴 정운호씨의 구명운동에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로비 자금 명목으로 50억원이라는 거액을 받은 사건이다.

최 변호사 외에도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도 정 대표의 구명 변호에 앞장섰고, 브로커 4명이 검은 로비 커넥션 의혹의 대상에 올라 있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50억원이라는 로비 자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들어 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막장 드라마 같은 이번 사건은 돈을 ‘만능 해결사’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어긋난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만 하다. 부장판사 출신이 원정도박이라는 죄의 대가를 감면해주기 위해 로비스트로 나섰다는 점에서 돈이라면 도덕이나 윤리는 아예 개의치 않는 의식이 무섭게 다가온다.

법조계에서는 사실 전관예우를 금지하기 위해 2011년 소위 ‘전관예우금지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4년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변호사 10명 중 9명은 여전히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절반 이상의 변호사는 “전관들이 법을 피해 우회적으로 사건을 수임하고 있어 전관예우법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소위 4대 사정기관이라 불리는 감사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의 고위직 종사자가 현직을 떠나면 대기업이나 로펌 등의 사외이사, 고문역 등의 명함을 들고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전관예우만으로 로비가 통할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5만원권 지폐가 들어 있는 박카스 상자를 주고받는 일이 흔하지 않겠지만, 로비를 위해 만나는 곳에 접대나 선물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한 고가의 식사나 선물은 비록 사소할지 몰라도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9월 28일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등을 금지한 법률)’이 절실한 이유다.

김영란법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소비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정당성만큼은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이라는 제한금액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논란이지만, 이는 공청회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다듬으면 된다. 최근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후원금을 주고 집회에 동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도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수정·보완해야 할 부분도 많다.

김영란법에 대한 여론을 미국과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준 ‘분노의 정치’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흙수저-금수저론’에 이어 ‘헬조선’이 최근 유행어로 떠오른 것은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하고, 돈이 흐르는 곳을 ‘그들만의 리그’로 보는 젊은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분노의 정치’ 시각은 편협한 분석이다.

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가 올해 초 발표한 부패인식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 34개 국가 중 체코와 함께 27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헝가리,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등 6개국뿐이다.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인 데 반해, 청렴도는 OECD 국가 중 중위권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과도한 접대나 선물이 없었다면 세월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정운호씨도 해외 원정 도박에 대한 제대로 된 죗값을 치렀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어 한 단계 도약하겠다는 의지의 출발이 용두사미 격으로 흐지부지돼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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