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歸農)이 대박이라고? [배국남의 직격탄]

입력 2016-04-20 06:39 수정 2016-04-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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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 등에서는 귀농으로 수억대의 수입을 올린다는 내용의 방송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 TV 등에서는 귀농으로 수억대의 수입을 올린다는 내용의 방송을 많이 하고 있다.

한 농민이 구덩이를 파고 양파를 묻으며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다. 충격적 장면이었다. 1982년의 양파 파동이다. 전두환 정부 시절 방송과 신문은 자식같이 키운 양파를 땅에 묻어야만 했던 농민의 눈물을 철저히 외면했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괜찮아요’만이 양파 농가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방송실연자 협회가 펴낸 ‘한국 TV 드라마 50년사’에 따르면 ‘전원일기’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노발대발했다. 당국자들은 “드라마가 농정 실책을 공격하고 국민의 사기를 일거에 무너뜨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했고 ‘전원일기’ PD와 작가를 대상으로 불온한(?) 단체와의 접촉 여부를 조사했다.

“농촌 드라마인데 농촌 현실과 농민의 삶을 배제할 수 없잖아요. 수많은 농민을 고통으로 몰고 간 양파 파동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에요.”‘전원일기’를 13년간 집필한 김정수가 훗날 양파 파동을 소재로 한 이유를 물은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20여 년 전 방송된 ‘전원일기’를 소환한 것은 지하철 벽면에 붙은 하나의 광고 전단이 다. ‘귀농! 월 300만~500만 원 보장’ 최근 본 지하철에 불법으로 붙인 광고 전단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도시에서 만난 ‘농촌’이다.

요즘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농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언론은 농촌과 농민을 변방으로 유배 보낸 지 오래다. 농촌 드라마는 시청률 저조와 광고 감소를 이유로 TV 화면에서 사라졌다.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 하면서 흙에 살리라…”홍세민의 ‘흙에 살리라’처럼 1970~1980년대 간간이 대중의 귀를 붙잡던 농촌 관련 노래는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영화에서의 농촌은 엽기적인 범죄 발생 현장의 클리셰(Cliche)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TV를 비롯한 미디어는 반박할지 모른다. KBS ‘6시 내 고향’, SBS ‘생방송 투데이-귀농은 대박이다’ 등을 방송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며 농촌 사랑이 여전하다고.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에서 반복해서 드러내는 농촌과 농민의 서사와 이미지는 농촌 현실이 철저히 거세된 왜곡된 것이 주류를 이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였던 레이몬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시골과 도시(The Country and The City)’에서 적시했듯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농촌 현실과 농민의 노동을 도외시한 채 농촌을 목가적 이상향으로 그리거나 아니면 촌스러운 것으로 취급한다.

요즘 미디어는 귀농을 이상적인 대안적 삶의 전형으로 현시하는데 열을 올린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자연과 함께 인심 좋은 농촌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에서 가족들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이제 한발 더 나아간다. ‘귀농, 수십억 대 수익’ ‘도시 근로자보다 훨씬 나은 농촌 수입’…미디어가 앞다퉈 농촌을 대박의 공간으로 묘사하는 것이 유행이다. TV와 대중문화에서의 농촌은 각박한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의 휴식 공간이자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대박을 통한 재기의 무대일 뿐이다. 미디어 속 농촌에는 심화하고 있는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문제, 1년 365일 일해도 빚만 늘어가는 현실, 악화하는 가족 해체, 그리고 차별에 시달리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의 눈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디어가 농촌을 이상화하고, 환상적으로 색칠하는 행태만이 넘쳐 날 뿐이다.

“귀농은 부딪치고 엮이고 굴러야 한다. 억대 매출은 절대 꿈꾸지 마라” “농사는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 3년 동안은 땅 사지 마라” … 일간지 사진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전남 구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원유헌 씨가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원유헌의 구례 일기-기어이 내려오겠다면’(한국일보 3월 26일 자)을 통해 한 경고성 당부가 농부의 마음을 대변한다. 오죽했으면 수많은 농민이 미디어가 농촌을 왜곡만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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