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시간 여행을 떠나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물론 현재 20대에겐 상상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1991년의 추억을 떠올리면 우리 또래 남자에겐 단 한가지 키워드만이 존재한다. 바로 ‘스트리트파이터2’다(이하 스트리트파이터 스파로 표기).
당시 오락실 기판으로만 80만 장이 팔려나갔고 비공식적인 루트까지 포함하면 제대로 된 집계가 힘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다. 얼마 전 영화보러 멀티플렉스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 옆에 있는 오락실에 갔는데 보글보글이 500원이더라. 에디터가 한창 출근도장 찍던 시절엔 게임 한판에 50원이었다.
그 당시 스파2가 대전 격투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용호의 권’이나 ‘사무라이 스피릿’같은 게임이 등장한 이유도 바로 스파2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다. 스파2 역시 이후 꾸준히 업데이트해 스파2 대시, 제로 등의 수많은 아류작을 내놨지만, 오리지널의 인기를 뛰어 넘긴 역부족이었다.
사실 그 이후 스파2는 잊고 살았다. 오늘 내가 잠시나마 25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이유다. 에디터 역시 다른 또래와 마찬가지로 먹고살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고, 그나마 먹고 살만해지니 좀 더 잘 살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지금도 역시 같은 이유로 이 기사를 쓰고 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난 생계형 글쟁이니까.
지난해 우연히 스파5 출시 소식을 지인의 페북을 통해 알게 됐다. 티저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길 한복판에서 우연히 지난 첫사랑과 조우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덕질은 이렇게 시작된다지.
예전의 추억을 되살리고 열정을 불태우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시절엔 오락 한판을 위해 부모님께 백원만 달라며 졸라야 했던 코 찔찔이였지만 지금의 난 자본력으로 무장한 사회인이 아니던가.
일단 플레이스테이션4는 갖고 있으니 패스. 그다음으로 필요한건 스파5 예약구매를 하는 용의주도함과 철저한 준비성이다. 하지만 불혹이 돼 버린 나에게서 그런 근성은 온데간데없어진 지 오래다. 쿨하게 PSN 카드를 충전하고 다운로드로 한다. 원래 지나간 추억은 하드에 묻는 법이다. 기다리는 동안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PS4로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다운로드가 많이 몰린 건지 꽤 시간이 걸리더라.
CAPCOM이라 쓰인 노란색 로고가 TV 화면을 가득 메우는 순간 어찌나 가슴 설레던지. 길어진 로딩 시간으로 그 감흥이 사라질 때 즈음이면 우리의 영원한 라이벌 류(RYU)와 켄(KEN)이 등장한다. 한글판이라고는 하지만 조악한 느낌의 엉성한 한글 자막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난 내 돈으로 다운로드해서 리뷰 중이니 이렇게 막 깔 수 있는 거다.
이 게임의 진행 방식을 모를 리 없을진데 뜬금없이 스토리 모드를 가장한 튜토리얼이 시작된다. 류와 켄이 주먹을 단련하기 위한 훈련을 한다는 미명하에 점프, 막기 등 다양한 기술을 연습해야 한다.
지루했던 튜토리얼이 끝나면 기존 스트리트파이터 캐릭터에 신규 캐릭터까지 더해져 총 16명의 캐릭터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메뉴가 나온다. 아직 안 나온 캐릭터는 추가 콘텐츠를 통해 업데이트 될 예정이라고.
‘캡콤 파이터즈 네트워크(CFN)’는 마치 베틀넷처럼 온라인상에서 사용자를 매칭해 전세계 스파5 게이머와 ‘맞짱’을 뜰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내가 도장 격파를 하며 고수를 찾아 떠돌던 故최영의(A.K.A 최배달) 선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지금 당장 게임을 하고 싶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니 시간이 걸리는 가입 과정은 과감히 패스한다. 대신 바로 실행 가능한 스토리 모드에 도전해 몸풀기 삼아 모든 캐릭터를 한 명씩 클리어했다.
이런 한정판 PS4도 있었지만 덕력이 부족해 손에 쥐지 못하였다고 한다
스토리 모드는 5분 안에 끝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보통 캐릭터마다 4스테이지만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빨리 끝날 수밖에. 게다가 난이도 역시 최하라 기술 없이 버튼만 눌러도 이길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스토리 모드가 시시한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뭐니 해도 대전 게임의 묘미는 ‘1P vs. 2P’ 2인용 대전에 있으니까.
야심한 시간이지만 아는 동생을 급하게 호출했다. 스트리트파이터 신작이 나왔다고 하니 당장 차로 달려올 기세더라. 초딩의 추억을 함께 향유하자는 미명 아래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집으로 불렀다. 물론 명분만 그랬을 뿐 속뜻은 달랐다. 아는 동생을 나의 소중한 1승의 재물로 삼을 요량에서다.
홈 어드밴티지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래서 난 호리 아케이드 스틱 V5를 사용하기로 했다. 나의 최애 캐릭터는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직 ‘류(RYU)’ 뿐이다. 동생은 켄(KEN)을 골랐다. 그리고 희생양(?)에겐 정품 PS4 조이패드인 듀얼쇼크2를 손에 쥐여 줬다. 완벽한 우승을 위한 확실한 안전장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라운드 1 파이트!’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른쪽에서 켄이 쏜 빨간 장풍이 ‘아도~겐!(자동음성지원)’이란 말과 함께 날아왔다.
‘퍼억….!’ 하도 당황해서 막을 틈도 없이 ‘선빵’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연이은 콤보 어택. ‘아땃따루겐~ 오류겐~ 피용피용피용’ 사진 한 장 없어도 다들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알 거라 생각한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굴욕적이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기습 공격에 손쓸 틈도 없이 치욕의 1패를 맛 보긴 했지만 더 이상의 나에게 실수는 없다. 나에게는 첫 대전에서 멘탈이 녹는 바람에 존재 자체를 아예 까먹고 있었던 최신형 무기가 있으니까. 훗.
아케이드 스틱은 오락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다. 제아무리 듀얼쇼크4의 아날로그 스틱을 이용한다 해도 아케이드 스틱을 이용하면 스치기만 해도 오류겐, 아도겐, 그리고 아따따루겐이 된다는 사실.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태 이 많은 說을 푼 거다.
기사 속의 코너1: 여기서 잠깐!
아직도 원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이 자리를 빌려 제대로 된 기술명(!)을 밝히고자 한다. 에디터가 위에 소리 나는 대로 썼던 건 모두 추억을 되살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거였다.
1.아도겐 -> 波動拳(はどうけん, 하도우켄) 파동권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풍’.
2.오류겐 -> 昇龍券(しょうりゅうけん, 쇼우류켄)승룡권이다. 용이 승천하는 모양을 닮아서 생긴 이름이다.
3.아따따뚜겐 竜巻旋風脚(たつまきせんぷうきゃく, 타츠마키센푸우캬크)용권선풍각이다. 선풍은 회오리바람을 뜻한다.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자니 참 민망하다. 겁 없는 초딩 시절(우리 땐 국민학교였다) 저 말과 함께 기술을 시전하던 순간을 떠올리니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이제 제대로 이해할 어른이 됐으니 정확한 발음을 써야겠지. 여러분은 더 이상 꼬맹이가 아니니까.
기사 속의 코너2: 질러라 장비!
일단 에디터가 사용하는 제품은 호리(HORI) 리얼 아케이드 프로 V(이하 RAPV) 하야부사(隼)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좀 긴 모델명 만큼 제품도 크다. 가로 약 430mm, 세로 약 237mm, 무게 2.2kg. 입력 하중을 개선한 레버와 오작동을 줄인 버튼을 새롭게 적용하고 내구성을 높여 쉽게 흥분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게임을 하는데 최적의 장비라고 할 수 있다. 단점을 굳이 꼽자면 사악한 가격과 크기에 비해 무게가 가벼워 본체 고정이 취약하다는 점. 케이블 길이는 넉넉하게 3m다. 가격은 15만원 선.
기왕 시작한 거 위에 소개한 RAPV의 대안을 찾아봤다. 여러분의 은행 잔고는 소중하니까. 매직랩코리아의 매직스틱 M5S가 있다. 작년 11월에 출시한 모델인 만큼 가장 최신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M5라는 일반 모델과 M5S 스페셜 모델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 두 가지는 옵션 버튼이 약간 다르고 나머지는 크기와 무게, 즉 덩치 차이라고 보면 된다. M5S는 본체를 철재로 만들었고, 가로 341mm, 세로 232mm, 무게 3.4kg의 탄탄한 외모를 갖췄다. 그립과 버튼은 오락실 게임기에 사용되는 산와(Sanwa)의 것을 써서 오락실 환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USB 케이블로 연결하는 방식이라 케이블 불량이나 단선 등의 상황에서 일체형 제품에 비해 수리가 편하다. 가격은 13만원 선.
조이트론 EX 레볼루션 역시 국민 아케이드 스틱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유명하다. 높은 가성비와 호환성이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윈도우10 PC부터 PS시리즈, XBOX시리즈를 모두 지원할 정도로 범용성이 높다. 여러 게임기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가장 추천하고 싶은 모델이다. 저가형인 만큼 고급 부품을 쓰지 못한 데 한이 맺힌 건지, 제조사에서 아예 산와 스틱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즉, 간단한 조작으로 아케이드 머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단 얘기다. 특히 정품 패드용 인식 커넥터가 있어 PS시리즈에서 발생하는 ‘8분 딜레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격은 7만원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직 끝판왕이 등장하지 않았다. PS4용 아케이드 스틱 중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메이크스틱 프로’가 남았으니까.
메이크스틱 홈페이지에서 기본형 모델로 구입한다면 꽤 저렴한 편이지만 어디 사람 욕심이 그렇던가. 이것저것 옵션을 붙이다 보면 마치 국산차처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일쑤다. 역시 가장 큰 장점은 게이머 입맛에 맞게끔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점. 본체 상판에 원하는 이미지를 입히거나, 스틱과 버튼을 취향대 바꿀 수 있고, 심지어 무게추를 달아 본체의 무게를 늘릴 수도 있다. 듀얼쇼크4처럼 무선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다 옵션이다.
나의 장바구니가 조만간 현실로 이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마음 가는 대로 마구 담아보기로 했다. 먼저 기본형 모델인 PS4용 메이크스틱 프로에 무선버전 듀얼쇼크4가 내장된 모델을 골랐다. 일단 가격은 17만 8000원부터 시작한다. 레버는 산와 레버가 좋다고 했지만 완충제를 통해 스틱의 반발력을 취향에 맞게 바꿀 수 있는 삼덕사 307F-ST(5000원)를 선택한다. 이건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오락실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원할 경우 에어백레버를 고르면 되고, 칼 같은 컨트롤을 원한다면 산와나 세이미츠 레버를 고르면 된다. 참고로 프로 게이머들이 주로 쓰는 세팅이다. 버튼은 가장 널리 쓰이는 산와 OBSC-30(1만4000원)으로 골랐다.
[이쯤이면 차라리 오락실용 게임기를 구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포기하지 말자.]
철판은 넉넉하게 2장을 추가해 본체 무게를 5kg으로 맞췄다. 혈기방장(血氣方壯)한 B형 남자는 이 정도 무게는 되어야 본체가 책상 위를 떠다니지 않는다. 개인 스킨은 고맙게도 서비스다. 그래서 스트리트파이터5 류의 이미지를 본사로 전송! 고화질 버전 이미지를 찾느라 고생 좀 했다. 무선인 만큼 배터리를 간과할 수 없다. 최후의 결전에서 배터리가 다해 캐릭터가 멈추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니까. 2,400mAh 대용량 배터리를 추가(1만 5000원)하고, 여기에 스피커도 더했다(5000원). 이 정도 쯤이야. 훗. 3.5파이 헤드셋 단자 연장은 신청하지 않았다. 어차피 쓸 일이 없을테니. 이렇게 모조리 쓸어 담은 제품의 총합은 23만 8000원.
흠… 예상대로다. 벼룩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더니. 이러다간 PS4 가격에 육박할 기세다. 다행인 건 주문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것. 설 연휴와 스파5 출시로 인해 주문이 폭주해 임시 품절이라는 희소식(?)이다. 여기서 조금 오버를 하자면 캐릭터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유도복 같은 코스프레 아이템이 필요한 정도일까? 물론 에디터의 소셜포지션에 맞지 않아 시도하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장비빨’로 무조건적인 승리를 담보할 순 없다. 몸으로 하는 건 역시 연습만이 살길이다. 여기에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투지와 근성도 필요하겠지.
‘어린 시절 스트리트파이터는 문화였고 놀이였다.’ 일본의 스트리트파이터5 광고 문구다. 하지만 이미 훌쩍 커버린 우리들에게 스트리트파이터는 추억이고 취미다. 물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파가 지금도 그 시절만큼 재미있을거란 장담도 하기 어렵다. 사실 에디터 역시 그랬다. 초딩시절 손에 땀을 쥐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느긋하게 게임이나 즐기는 아저씨의 모습만이 남아있더라. 나이가 들면서 얻게 된 단점 한가지를 의외의 영역에서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에잇! 장풍이나 쏘자! ↓➘→ +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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