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보여주기×보여주기' 행사 ‘블프’

입력 2015-10-1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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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산업1부장

이달 14일까지 열리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약칭 블프)가 정부 당국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진행으로 반쪽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

짧은 준비 기간에 제조업체들을 배제하고 유통업체만 끼워 넣은 데다,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아 ‘속 빈 강정’ 행사에 그쳤다는 지적이 많다. 블프라는 용어를 사용할 만큼 절반이 넘는 할인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실망 섞인 자조도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블프가 성공했다고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주형환 기재부 1차관은 지난 8일 “한국판 블프를 계기로 소비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행사 기간에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백화점 25%, 가전 유통전문점은 21%가 늘었다는 중간 집계 결과도 내놓았다.

하지만 유통업계에선 요란한 분위기와 달리 내실은 부족하고, 대표적인 보여주기식 전시행사에 불과하다는 쓴소리를 하고 있다. 정부가 성과로 제시한 숫자는 일부 백화점, 그것도 의류 매출이 태반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가전 유통전문점 매출 역시 결혼 시즌과 겹치면서 부풀려졌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마트나 전통시장에선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블프를 아예 모르는 곳이 월등히 많다.

전국적인 소비 진작을 위해 마련된 범 국가적인 행사가 왜 백화점 몇 곳에서만 열리는 행사로 전락했을까?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자.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을 대상으로 한국판 블프 행사안을 제시한 것은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초다. 국내 경기가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자 내수를 살려 침체한 경기를 이겨내자는 의도였다. 유통업체들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준비 기간이 부족하고 제조업체들의 협력 없이는 행사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지시를 기업이 반대하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어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유통업체들이 미적거리는 사이 산업부는 일방적으로 행사를 밀어붙인다.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담당자에게 작용한 탓일 게다.

산업부와의 회의 이후 행사의 실효성을 놓고 고민하던 유통업체들은 갑작스럽게 A기업으로부터 “우리가 앞장서서 진행할 테니 따라만 와 달라”는 주문을 받게 된다. 이후 A기업은 행사 전면에 나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 기업의 오너는 직접 행사를 챙기면서 세일 품목을 확대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정부의 방침에 맞장구를 쳐줬다. A기업이 자청해서 앞서 나가자, 다른 업체들은 눈치를 보며 A기업을 따라가게 된다.

A기업이 선두에서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선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어떻게 해서든 소비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자는 의지는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면 이 기업이 갑자기 ‘진두지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이유는 뭘까?

A기업은 최근 경영권 분쟁으로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놓인 회사다.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블프 행사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사과의 뜻을 전하고, 정부 정책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의사의 간접적인 표현인 것이다. 이 기업은 면세점도 운영하고 있는데, 정부에 밉보일 경우 연말 사업자 심사에서 큰 불이익을 당할까봐 그런 행동을 취했다고 보는 게 맞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판 블프에 백화점 71곳, 대형마트 398곳, 편의점 2만5400곳 등이 참여했다고 하지만, 실제 세일 행사는 백화점 몇 곳 위주로만 진행된 반쪽 행사에 그치고 있다. 백화점 매출도 70% 이상이 의류에서 나올 정도로 일반 생활용품은 이번 행사에서 배제돼 있다. 대형마트 역시 매출 신장률은 1.6%에 그치고 있다. 전통시장은 전국 1500여 곳 중 200곳만 참가했다.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공무원, 정부에 잘 보이려는 특정 기업이 만들어낸 한국판 블프는 ‘보여주기×보여주기’ 행사로 끝날 것이 확실하다. 내년부터 정례화한다면 정부의 일방적 지시가 아닌, 자발적 참여가 가능하게 충분한 소통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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