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현장] 누가 안신애에게 루키즘 덫을 놓았나

입력 2015-09-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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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안신애가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통산 3승이자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KLPGA)
▲프로골퍼 안신애가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통산 3승이자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KLPGA)

“우리 딸이 얼굴도 괜찮고 몸매도 좋아요. 예쁘게 봐주세요.” 2008년 11월 전남 무안에서 만난 한 여자 프로골퍼의 아버지 A씨의 말이다. 당시 전남 무안에서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드 순위전이 한창이었다. 일부 기업 스폰서 관계자들은 일찌감치 대회장에 진을 치고 ‘좋은 선수’ 물색에 나섰다. 딸의 메인 스폰서가 없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 A씨는 기업 스폰서 관계자들에게 자세를 낮춰 관심을 유도했다.

A씨가 딸의 장래를 위해 기업 스폰서 관계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모습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더 안타까운 건 딸의 골프 실력과 잠재력은 일절 어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폰서 관계자들이 찾는 ‘좋은 선수’의 조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2008년 겨울은 KLPGA 투어에 기업 후원 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골프단이 창단돼 있을 만큼 기업의 프로골퍼 마케팅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기업만 있고 선수는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선수 몸값 폭등은 예견된 일이다.

당시 고교 3학년이던 안신애(25ㆍ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도 그해 시드 순위전을 통해 2009년부터 정규투어에서 활동했다. 또래 선수들에 비해 그린 주변 쇼트게임이 돋보였던 그는 잠재력 있는 미녀 골퍼로서 주목받았다.

그의 진가는 투어 2년차이던 2010년부터 나타났다. 한 해에만 2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안신애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경기장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돋보이는 외모 덕에 대회 출전 자체만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루키즘(lookismㆍ외모지상주의)’의 승자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1년 원인 모를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성적 부진과 함께 찾아든 건 온갖 스캔들과 소름 돋는 악플이었다. 루키즘의 승자인줄만 알았던 그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성적이 부진할수록 그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고개를 들었다. 더 이상 골프선수 안신애는 없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안신애란 이름은 완전히 퇴색돼 버렸다. 그가 가진 장점 중 일부인 외모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올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KLPGA 챔피언십은 골프선수 안신애를 팬들의 기억 속에 다시 한 번 각인시킨 대회였다. 4번의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든 안신애는 또 다시 필드 위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5년 만에 우승이자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오른 안신애는 ‘온갖 스캔들과 악플 속에서도 골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만인에게 증명했다.

우승 효과는 놀라웠다. 삽시간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점령하면서, 지난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프 여제’ 박인비(27ㆍKB금융그룹)를 무색하게 했다.

루키즘이 만든 사회적 병폐이다. 일부 기업의 무분별한 섹시 마케팅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다. 루키즘이란 잔인한 덫에 걸려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선수들만 있을 뿐이다. ‘스포츠는 실력으로 모든 것을 입증한다. 그것은 장기 흥행으로 가는 유일한 열쇠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무시한 일부 기업의 무책임한 섹시 마케팅이 또 다른 루키즘의 덫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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