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서울의 오르한 파묵’을 고대하며

입력 2015-08-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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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터키 시인 오르한 웰리 카늑(1914~1950)은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술 취해 이스탄불의 맨홀에 빠져 숨진 사람이다. 그의 시 ‘이스탄불을 듣는다’의 마지막 연은 ‘이스탄불을 듣는다. 두 눈을 감고서/한 마리 새는 그대 치마 위에 파닥거리고/그대 이마의 따스함과/그대 입술의 촉촉함을 나는 안다/피스타치오 나무 뒤로 하얀 달은 떠오르고/나는 안다. 두근거리는 그대 가슴을/이스탄불을 듣는다. 두 눈을 감고서’라고 돼 있다.

그의 사망 2년 뒤에 태어난 노벨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은 ‘터키의 작가’라기보다 ‘이스탄불의 작가’로 더 알려진 사람이다. 화가가 되려다가 소설가가 된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집요하게 이스탄불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소설 ‘순수박물관’을 발표(2008년)하기 전부터 건물과 물건을 사들여 2012년 순수박물관을 열었다. 허구를 실제로 만든 이 박물관은 주인공 케말의 연인 퓌순에 대한 기억의 보관처이자 작가 자신의 삶을 되살리는 곳이며 이스탄불을 보전하는 공간이다.

오르한 파묵은 눈을 감지 않고도, 귀를 막고도 이스탄불을 듣는 사람이다. 그의 에세이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2003년)에는 이스탄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책은 “풍경의 아름다움은 그 슬픔에 있다”는 터키 작가 아흐메트 라심(1864~1932)의 말로 시작된다. 파묵이 이스탄불을 좋아하는 것은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의 주제어는 비애다. 파묵은 1850년부터 2000년까지 150년간 이스탄불을 지배하고 도시에 널리 퍼진 감정은 비애라고 썼다. 슬픔, 비탄, 침울, 우울로 바꿔 말할 수 있는 정서다. 그런 도시를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완전하게 기록해 보존하는 것이다. 그의 문학 활동은 이스탄불의 소멸에 대한 저항이다.

앞에서 인용한 오르한 웰리 카늑의 시 ‘이스탄불의 노래’에도 슬픔이 나온다. ‘저는 이스탄불 보아지치(보스포루스 해협)에 사는/가난한 사람 오르한 웰리입니다/설명할 길 없는 슬픔 속에 있는/웰리 집안의 아들입니다.’ 시의 처음과 끝이 이렇게 같은 말로 돼 있다.

보름 전, 유라시아문화포럼(이사장 홍태식)의 한-터키 하계 국제 문학인대회를 참관할 겸 휴가차 찾았던 이스탄불은 과연 공존과 폐허의 도시이면서 비애의 도시로 보였다. 파묵이 여름보다 더 좋아한다는 눈 덮인 겨울은 보지 못했지만, 독일 작가 안톤 쉬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상으로 길게 나열한 감성적 풍경은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그는 “이스탄불이 비애의 도시라는 말을 듣는 것이 왜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는 걸까? 왜 나는 나의 도시가 준 감정이 비애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 걸까?”라고 썼다. 그의 말대로 도시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된다.

10년 전 한국을 다녀간 직후, 그는 사바흐라는 터키 신문에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이 어때요?’라는 글을 썼다. 그가 글에서 언급한 것은 토요일 오후 사람들로 꽉 찬 격납고처럼 넓은 서점,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휘황찬란한 건물들과 호텔 로비들, 아찔할 정도의 부유함과 경제 성장, 그리고 북한의 위협 따위였다. 이모부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바 있어 그는 어려서부터 한국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사람이다.

이스탄불을 둘러보면서 서울과, 서울의 작가들을 생각했다. 이스탄불이 비애의 도시라면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이스탄불엔 폐허가 있다. 서울엔 폐허가 없다. 폐허는 삶의 치열함과 인간의 존엄, 그리고 역사를 가르쳐준다. 우리는 폐허를 남겨놓지 않았다. 그 위에 아찔할 정도의 부를 세우기 위해 진력해왔다. 지금 서울은 폐허도 없는 부화(浮華)와 환락의 도시 아닌가?

1920년 김억, 염상섭 등이 발행한 문예동인지에 ‘폐허’가 있었다.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옛것은 멸하고 시대는 변했다./새 생명은 폐허로부터 온다’는 시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폐허의 폐허의 폐허 속에서 새 생명을 찾아야 한다.

오르한 파묵을 더 인용하면 일상생활은 고귀한 것이며 일상의 물건은 보존돼야 한다. 그리고 불행이란 자신과 도시를 혐오하는 것이다. ‘서울의 순수박물관’, ‘서울의 오르한 파묵’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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